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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 길을 밝히다(독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①

by 공자 (공영효) 2023. 3. 5.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발톱을 깎다가 

눈물 한 방울

너 거기 있었구나. 멍든 새끼발가락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것은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운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

 

지능과 덕으로 최선을 다해도 우리는 다가올 운명을 바꿀 수 없네.

데카르트처럼 모든 것을 회의하면서 끝까지 가도,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과 만나게 돼. 빅데이터가 모든 걸 설명해 주지 못해. 합리주의의 끝에는 비합리주의가 있지. 그렇다 타고 난 팔자에 인생을 맡기고 자기 삶의 운전대를 놓겠나? 아니 될 말일세. 그리스에서 말하는 운명론이란, 있는 힘껏 노력하고 지혜를 끌어 모아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야. 이걸 이해해야 하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저편의 세계, something great가 있다는 거야. 지혜자만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네. something great를 인정하고 겸허해지는 것은 머나먼 수련의 길이야.

 

한방의 까마귀는 울지만, 우리는 까마귀를 볼 수도 없고 그 울음소리를 듣지도 못해. 그러나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분명히 한밤의 까마귀는 존재한다네. 그게 운명이야.

 

그런데.. 어릴 때 야단맞을까 두려워 딴소리 안 하고, 고분고분 둥글둥글 살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고 살게 돼. 안타까원 일이네.

 

이 세상은 자연계, 기호계 , 법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네. 이 세 가지가 전혀 다른 세계야. 이걸 이해해야 우리는 혼돈 없이 세계를 보고 분쟁 없이 대화할 수 있어.

알렉산더가 통 속에 사는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을 때 일화도 그 예야. 아주 유명한 얘기지.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가 조그만 통 속에 들어앉아 햇빛을 쬐는 디오게네스에게 그랬어.

'나는 정복자니, 왕국의 일부를 너에게 줄 수 있다. 소원을 말해보라.'

'비키시오. 당신이 햇빛을 가리고 있느니 비겨주시오.'

디오게네스는 알고 있었어. 알렉산더가 지배한 건 법계의 세계였다네. 

'왕국은 네가 지배하지만 햇빛은 지배하지 못해. 왕국은 네 것이라도 태양은 자연의 것이다. 그러니 비겨. 나 지금 햇빛 쬐고 있다는 거야. 네 권력 쬐고 있는거 아냐. 난 이 통속에서 살아. 네 왕국이 아니라.'

디오게네스에게 통은 생각의 세계야. 그래서 권력자가 앞에서 단호할 수 있는 것지. 네가 지배하는 세계로 나를 지배할 수 없다고. 내 생각을, 태양빛을 너는 지배하루 수 없다고, 너는 그저 말 타고 땅 따 먹는 권력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그런데 독재자들이 그걸 몰라. 자기가 하늘도 움직이고 바다도 때리고, 햇빛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 '비논리'에 저항할 수 있어야 '자유인'이라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둥글둥글,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세계에선 관습에 의한 움직임은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발전의 동력은 얻을 수 없어.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고,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점이라네. 타자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왜곡해선 안 돼. 일례로 우리는 내가 아플 때 남이 그걸 아는 줄 알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런데 그 아픔은 자기 아픔을 거기다 투영한 것뿐이네."

 

"선생님, 럭셔리한 삶이 뭘까요?"

"력셔리한 삶...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내.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는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interest라는 영어 단어는 관심, 재미라는 뜻도 있지만 이익, 이자라는 뜻도 있어. 우리가 이익을, 이자를 내려면 애초에 관심 잇는 것, 흥미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interest가 출발이지. 그게 모든 일의 순서고 이치라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오늘도 내일도 똑같으면 뭐하러 살 텐가. 진리를 다 깨우치고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네. 이제 다 끝났잖아. 서울이 목표인 사람은 서울 오면 끝난 거야.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우지, 반환지가 있을지언정 목표는 없네. 평생을 모험하고 방황하는 거지. 길 위에서 계속 새 인생이 일어나는 거야. 원래 길의 본질이 그래. 끝이 없어. 이어지고 펼쳐질 뿐.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

방황하라.

길 잃은 양이 돼라.

 

의식주와 진선미지. 월급 더 많이 받고, 자식이 더 좋은 학교 가고...이게 목적이 되면 그건 리빙이야. 진선미에서 오는 기쁨이 없지. 그러니까 돈을 더 벌지 몰라도 인생이 내내 고된거야. 진선미를 아는 사람은 밥을 굶어도 웃는다네.

공자가 그러지 않아.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는 식사를 잊어버린다고. 자는 걸 잊고 먹는 걸 잊어. 의식주를 잊어버리는 거지. 그게 진선미의 세계고, 인간이 추구하는 '자기다움'의 세계야.

자기 무늬의 교본은 자기 머리에 있어. 그걸 모르고 일평생 남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처지식 먹여 살리고, 죽을 때 되면 응급실에서 유언 한마디 못하고 사라지는 삶...그게 인생이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나? 한순간을 살아도 자기 무늬를 살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으로 보면 안 돼. 자본주의라도 노동은 재미없는 거야. 인생 그렇게 살면 노예 되는 거야. 노예는 사회주의에도 있고 자본주의에도 있어. 반대로 예술은 사회주의에도 할 수 있고 자본주의에서도 할 수 있어. 단, 그러려면 자유의지가 있어야하네. 길을 일탈해서 길 잃은 자유가 있어야 해. 그게 선이든 악이든 일단 나의 행위가 있어야 하는 거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은 신에 가까운 자유의지를 갖게 된 거야. 신이 그것을 허락한 것야. 신은 자유의지를 가져도 실수를 안 하는데, 인간은 실수할 수 있어. 악도 선도 행한다네. 그래서 선악과야. 그게 인간의 원죄인 거야. 그 모든 배경을 알고 이제는 자네가 답할 차례야."

"자네 무문석 짜래? 화문석 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