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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 길을 밝히다(독서)

【미움받을 용기 】두 번째 밤 :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by 공자 (공영효) 2022. 4. 24.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뒤로 미뤄서는 안돼.

가장 해서는 안되는 것이 이 상황

'이대로'에 멈춰 서 있는 것이라네."

 


왜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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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되어 있고, 자네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 아들러는 말했네. "고민을 없애려면 우주공간에서 그저 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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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그 여학생은 자시감이 없었네. 이대로 고백했다가는 차일게 틀림없어. 그러면 점점 자신을 잃고 상처받게 될 거야, 하는 공포심이 있었어. 그래서 적면공포증이라는 증상을 만들어낸 걸세. 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단 '지금의 나'를 받아 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라네. 이러한 접근 방식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부여'라고 하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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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고독을 느끼는 것은 자네가 혼자라서가 아닐쎄. 자네를 둘러싼 타인.사회.공동체가 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독한 거지. 우리는 고독을 느끼는 데도 타인을 필요로 한다네. 즉 인간은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비로소 '개인'이 되는 걸세.

[청년정말 혼자라면, 다시 말해 우주 공간에 단 한 명만 존재한다면 '개인'도 아닐뿐더러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철학자아마 고독이란 개념조차 없을 걸세. 말도 필요 없고, 논리나 상식(공통상식)도 필요 없게 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비록 무인도에 살지라도 머나먼 바다 저편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지. 혼자 있는 밤일지라도 누군가가 새근새근 자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네.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는 한 고독이 닥치게 되어 있어.

[청년하지만 방금 전에 하신 말씀은, 바꿔 말하면 "우주 공간에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고민은 사라진다"라는 뜻이 되지 않습니까?

[철학자논리상 그렇지. 어쨌든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단언 했으니까.

[청년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철학자몇 번이고 말해주지. "인간의 고민은 죄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이는 아들러 심리학의 근처에 흐르는 개념일세. 만약 이 세계에 인간관계가 사라진다면 그야말로 우주 공간에는 단 한 사람만 존재하고, 다른 사람이 사라진다면 온갖 고민도 사라질 걸세.

[철학자: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하네. 다른 사람과 떨어져 사는 것은 원리적으로는 불가능해. '우주공간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은 자네가 말한 대로야.

 


열등감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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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구체적으로 어떤 열등감이지?

[청년: 예를 들어, 신문 등을 통해 저와 비슷한 또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열등감을 느껴요. 같은 시간을 살아온 누군가는 저렇게 활약하고 있는데, 대체 나는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친구의 행복한 모습을 볼 때도 축복해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질투와 초조함이 앞섭니다. 주근깨로 뒤덮인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고, 학력이나 직업, 연봉 등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도 심한 열등감을 느낍니다. 뭐 온몸이 열등감으로 똘똘 뭉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학자:  알겠네. 참고로 말하자면, 열등감이란 단어를 현재 통용되는 맥락으로 처음 쓴 사람이 아들러라고 알려져 있네.

[청년: 허, 그건 몰랐네요.

[철학자: 아들러는 열등감을 '민더베르티히카이트게퓔(Minderwertigkeitsgefuhl)'이라고 했네. 독일어로 '가치(Wert)'가 '더 적은(ninder)' '느낌(Gefuhl)'이라는 뜻이지. 즉 열등감이란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과 관련된 말이지.

[청년: 가치판단이요?

[철학자: 부정적일 때는 나는 가치가 없다, 이정도 가치밖에 안 돼,라는 느낌으로 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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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내가 내 키에 대해 느낀 열등감은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ㅡ다시 말해 인간관계ㅡ를 통해 만들어낸 주관적인 감정이었네. 만약 비교해야 할 타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 키가 작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객관적인 '열등성'이 아니라 주관적인 '열등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키에 관한 문제조차 주관이 개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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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그럼 열등감을 가리키는 독일어 '민더베르티히카이트게퓔(Minderwertigkeitsgefuhl)'을 떠올려보게. 방금 전에 나는 그 단어가 가치판단과 관계있다고 말했네. 그렇다면 대체 가치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비싼 값에 거래되는 다이아몬드, 혹은 돈 우리는 여기에 어떤 가치를 매기고 1캐럿에 얼마라거나 물가가 어떻다고 말하네. 하지만 다이아몬드 같은 건 관점을 바꾸면 한낱 돌맹이에 불과하지.

[청년뭐 이론상으로는 그렇죠

[철학자요건대 가치란 사회적인 맥락에서 성립하는 거라네. 1달러짜리 지폐를 주어진 가치는 상식(공통감각)의 하나이긴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가치가 없네. 인쇄물로서 원가를 고려해도 1달러어치의 가치도 없다네. 만약 이 세계에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1달러짜리 지폐를 난로에 던져 넣고 불을 지필 걸세. 코를 풀지도 몰라. 그와 같은 논리로 내 키와 관련해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청년......... 이 세계에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철학자그래. 가치의 문제도 최종적으로는 인간관계로 환원되는 거지.

[청년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시 비롯된 고민이라는 말과 연결되는군요?

[철학자그렇지.

 


변명으로서의 열등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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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우선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네. 그리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보편적인 욕구를 갖고 있지. 아들러는 이를 '우월성 추구'라고 했네.

[철학자여기서 간단히 '향상되기를 바라는것' , '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거야...... 인류사 전체를 보자면 과학의 진보도 '우월성 추구'라고 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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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열등감일세. 인간은 누구나 더 나아지길 바라며 우월성을 추구하지. 그래서 어떠한 이상과 목표를 내걸고 그것을 항해 전진한다네. 하지만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내가 뭔가 모자라다고 느끼게 돼.  요리사의 경우 그 뜻이 높으면 높을수록 '여전히 서투르다'  , '더 깊은 맛을 내야 한다'는 식으로 일종의 열등감을 안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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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아들러는 "우월성 추구도 열등감도 병이 아니라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하기 위한 자극이다"라고 말했네. 열등감도 제대로만 발현하면 노력과 성장의 촉진제가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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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마찬가지로 '열등감'과 '열등 콤플렉스'도 혼동하지 말고 정확하게 구분해서 써야하네.

[철학자열등감 자체는 그다지 나쁜 게 아닐세. 아들러도 말했듯이 열등감은 노력과 성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가령 학력에 열등감을 느껴 "나는 학력이 낮다, 그러니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하자"라고 결심한다면 도리어 바람직하지 않나. 하지만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네. 구체적로는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라고 하거나"나는 못생겨서 결혼을 할 수가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지.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A라서 B를 할수 없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이미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난 걸세. 그건 열등 콤플렉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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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간단히 말해 한 발 앞으로 내미는 것이 무서운거지.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ㅡ예를 들면 놀거나 취미를 즐기는 시간ㅡ을 희생해서까지 변하고 싶지 않다. 즉 생활양식을 바꿀 '용기'가 없는 거라네. 다소 불만스럽고 부자유스럽지만 지금 이대로가 더 편한 거지.

 


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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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심한 열등감에 괴로워하면서도 노력과 성장 같은 건전한 수단을 이용해서 보완할 용기가 없어. 그렇다고 "A라서 B를 할 수 없다"라는 열등 콤플렉스도 더는 견뎌낼 수 없지. '못난 나'를 받아들일 수가 없거든. 그러면 인간은 더 값싼 수단으로 보상하려고 한다네.

[청년어떻게요?

[철학자마치 자신이 우월한 것처럼 해동하며 '거짓 우월성'에 빠지는 걸세.

[철학자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하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 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나거든. 이른 완벽한 우월 콤플렉스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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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고 '특별'해지는 거지. 병에 걸렸을 때, 다쳤을 때, 실연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런 태도를 취하며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네.

[청년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내놓고 마치 무기처럼 휘두르는 거군요?

[철학자그렇지. 물론 상처 잆은 사람이 "너는 내 마음을 이해 못해"라고 하는 말에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겠지. 당사자의 기분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자신의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네.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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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모든 인간은 대등하다, 같은 길을 걷는다. 그래도 거기에는 '차이'가 있죠" 앞서 걷는 사람은 뛰어나고, 뒤에는 쫓아가는 사람은 뒤떨어지는, 결국은 우열의 문제에 다다르지 않을까요?

[철학자그렇지 않네. 앞서 걸으나 뒤에서 걸으나 관계없어. 쉽게 말해 우리는 세로축이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공간을 걷고 있네. 우리가 걷는 것은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청년선생님은 모든 경쟁에서 자유로우십니까?

[철학자물론일세. 지위와 명예를 좇지 않고 재야의 철학자로서 세속의 경쟁과는 연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청년그것은 경쟁에서 내려왔음을, 측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입니까?

[철학자아니. 승부를 다투는 장소에서 물러났다는 표현이 맞겠지. 내가 나로서 살려고 할 때 경쟁은 필히 방해가 된다네.

[철학자만약 그 라이벌이 자네에게 '친구'라고 불리는 존재라면 자신을 연마할 기회가 되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쟁 상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네.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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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경쟁과 연결된 얘기니까. 기억하게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청년: 어쩨서요?

[철학자: 경쟁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만이 남으니까.

[청년: 승자와 패자라.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철학자: 구체적으로 자네의 일이라고 생각해보자고. 자네가 주변 사람들에게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하세. 그런데 경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어. 이런 관계에서는 승패를 의식할 수밖에 없지. "A는 이 명문대학에 들어갔고, B는 저 대기업에 취직했고, C는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과 사귀고 있어. 그에 비하면 나는 요 모양이네." 이런 식으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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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경쟁이나 승패를 의식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열등감이야.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이 사람에는 이겼어. 저 사람에게는 졌어,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네. 열등 콤플렉스나 우월 콤플렉스는 그 연장선상에 있지. 그렇다면 이때 자네에게 타인은 어떤 존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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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경쟁의 무서움은 그걸세.  설사 패자가 되지 않더라도, 경쟁에서 계속 이긴다고 할지라도 경쟁 속에서 사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새가 없어.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아. 그리고 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늘 이겨야 하지. 남을 믿을 수도 없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그들이 늘 경쟁 속에서 살기 때문이지. 그들에게는 세계가 적으로 넘쳐나는 위험한 장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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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자네가 전에 말했지?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가 없다"라고 말이야. 그것은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한 걸세. 하지만 일단 경쟁의 도식에서 해방되면 누군가에게 이길 필요가 없네. '질지로 모른다'는 공포에서도 해방되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게 되네. 그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어줄, 믿을 수 있는 타인, 그것이 친구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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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 권력투쟁에서 한 가지 더 일러둘 말이 있네.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여겨도 그것을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지는 말게. 이것이 많은 사람이 빠지는 인간관계의 함정이지.

[철학자] : 인간관계에서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권력투쟁에 발을 들이게 되네.

[철학자] :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옳겨 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철학자] : 애초에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 관계가 없어. 자네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하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사람이 권력투쟁에 돌입해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그러니까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거라네.

 


'인생의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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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 먼저 행동의 목표로는 '자립할 것'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라는 두 가지를, 이러한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로는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과 그로부터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는 의식을 갖는 것을 제시했네.

[철학자] : 인생이라는 말을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 보세.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에게 보호를 받으며 특별히 하는 일 없이도 살 수 있었네. 하지만 끝내 '자립'할 때가 찾아와. 언제까지나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 수 없지. 정신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의미에서도 자립하여 일-회사에서 일한다는 좁은 의미가 아니네-을 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아울러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교우관계를 맺게 되네. 물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것이 결혼으로 까지 이어지기도 하겠지. 그러면 부부관계가 시작되고, 아이를 낳으면 부모자식 관계가 시작되네. 아들러는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인간관계를 '일의 과제' , '교우의 과제' , '사랑의 과제' 라는 세 가지로 나누고 이를 합쳐 '인생의 과제'라고 불렀네.

[철학자] :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 그것이 인생의 과제네. '직면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그대로 '과제'인 셈이지.

 


붉은 실과 단단한 쇠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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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 ............ 친구는 많을 수록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과연 그럴까? 친구와 지인의 수는 결코 중요하지 않네. 이는 사랑의 과제와도 연결되는 내용인데, 중요한 것은 관계의 거리와 깊이라네.

[철학자] :  사랑의 과제는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네. 하나는 흔히 말하는 연애관계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족관계, 특히 부모자식 관계라네. 일, 교우에 이은 세 가지 과제 중 사랑의 과제가 가장 어렵지. 예를 들어 친구 사에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을 때, 친구 사이에서는 허용되는 말이나 행동이 연인이 된 순간 허용되지 않기도 하네. 구체적으로는 다른 이성친구와 노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성인 누군가와 통화만 해도 상대가 질투를 하지. 그만큼 거리도 가깝고 관계도 깊은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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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 적극적으로 바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닐세. 이렇게 생각해보게.  함께 있으면 왠지 숨이 막히고 긴장으로 몸이 뻣뻣해지는 관계는, 연애는 가능해도 사랑이라고는 할 수는 없네. 인간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네.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고, 우월함을 과시할 필요도 없는, 평온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진정한 사랑이라 그런 걸세. 반면에 구속이란 상대를 지배하려는 마음의 표징이며, 불신이 바닥에 깔린 생각이기도 하지. 내게 불심감을 품은 상대와 한 공간에 있으면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을 수 없겠지? 아들러는 말했네, "함께 사이 좋게 살고 싶다면, 서로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철학자] : 단 연인 사이나 부부관계에서는 '헤어진다'는 선택지가 있네. 오랜 세월 함께 산 부부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지면 헤어질 수도 있어. 그런데 부모자식 관계는 원칙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해. 인연이 붉은 실로 연결된 사이라고 한다면, 보모자식은 단단한 쇠사슬로 연결된 관계일세. 게다가 손에는 작은 가위 밖에 없지. 부모자식 관계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네.

 


'소유의 심리학'에서 '사용의 심리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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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 프로이트의 원인론은 '소유의 심리학'이고 결국엔 결정론으로 귀결돼. 반면 아들러 심리학은 '사용의 심리학'이고 결정은 자네가 하는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