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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 길을 밝히다(독서)

【말의 품격 】언위심성(言爲心聲) _ 이기주

by 공자 (공영효) 2022. 6. 14.

"사람이 지닌 고유한 향기는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인향 : 사람의 향기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 성대중成大中이 당대의 풍속을 엮은 잡록집인<청성잡기>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내무족자 기사번 심무주자 기사황內不足者 其辭煩 心無主者 其辭荒"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의 구조를 뜯어 보면 흥미롭다.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되다는 뜻이다. 사람의 체취, 사람이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분명 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빛을 갚기는커녕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더러운 말이 마음에서 떠올라 들끓을 때 입을 닫아야 한다.

말을 죽일지 살릴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그리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진다.

 

언행 :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

리더의 말은 곧고 매서운 직선인 동시에 부드러운 곡선과 같아야 한다. 때로는 능수능란하게 휘둘러서 도려낼 것을 도려내야 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친친둘러 감아서 껴안을 대상을 껴안아야 한다.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는 재난 상황이라면 리더는 위기의 본질을 꿰뚫고 흐트러짐 없는 말로 신속하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

입으로 내뱉는 말과 몸으로 취하는 행실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음식과 양념처럼 말이다.

음식을 조리하면서 어울리는 양념을 적당히 가미하면 맛은 배가되지만, 양념 양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양념을 치기라도 하면 음식 고유의 맛과 풍미가 사라진다. 요리를 망치고 만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 펼쳐놓는 요리(말)와 애써 뿌린 양념(행동)의 궁합이 잘 들어맞는지, 음식 맛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본질 : 쉽게 섞이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

알곡과 쭉정이는 겉모양이 비슷해서 평소에는 쉽게 구분하기 어렵지만, 추수철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들판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알곡과 쭉정이의 명암이 엇갈린다.

바람은 속이 빈 쭉정이를 날려버리지만 가을볕에 잘 여문 알곡은 들판에 그대로 남겨둔다. 그제야 들판의 혼돈은 정리된다.

이처럼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은 잠시 한데 뒤엉켜 지낼 수는 있으나, 언젠가는 서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사람과 말도 본질도 매일반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하고 감추려 해도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은 언젠가는 드러나고 만다. 본성과 본질, 진심 같은 것은 다른 것과 잘 뒤섞이지 않는다. 쉽게 으깨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진실한 것은 세월의 풍화와 침식을 견뎌낸다. 말에 비법은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차분히 복기復棋하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이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단 하나다. 말하는 기술만으로는 당신의 진심을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계 :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단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라틴어 어원은 '커뮤니카레communicare'이다. '교환하다', '공유하다'등의 뜻이 담겨 있다.

말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소통은 혼자 할 수 없다. 소통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며 화자와 청자가 공히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때 가능하다. 상대의 귀를 향해 하고 싶은 말안 일방적으로 내던지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독백만 주고받는 일인지 모른다.

인생은 작은 오해와 인연을 맺거나 풀어가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다만 인생이라는 강은 담번에 건너뛸 수 없다.

사귐도 그렇다. 크고 작은 돌을 내려놓고 그것을 하나씩 밞아가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차근차근 건너가야 한다.

삶과 사람 앞에서 디딜 곳이 없다고 조급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인생과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