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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 길을 밝히다(독서)

인간은 지행합일(知行合一)... ?

by 공자 (공영효) 2022. 2. 22.

고양이로서는 정말 인간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혜로운 동양인들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외치고, 동시에 지혜로운 서양인들은 이론과 실천의 합일, 혹은 변증법적 종합을 이야기한다. 지금  인간들 스스로 자신이 앎과 삶이 괴리된 존재라는 것을 토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미 지행합일이 되어 있다면 그것을 꿈꾼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놀라운 것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은 지행합일이 되어 있고, 이론과 실천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인간은 고양이 선생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을 존경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지행합일도 되지 않으면서도 인간은 지행합일이 이루어진 동물들을 열등하다고 조롱하며, 심지어 자신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뻐기고 있다.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배가 고프면 늑대는 닭을 잡아 먹는다. 지행합일이다. 그러니까 배가 고픈 것을 아는 순간, 동물들은 무엇인가를 먹는다.

그렇지만 인간은 어떤가? 배가 고픈 것을 알아도 생명 존중이든 다이어트든 간에 어떤 괴상한 이유를 들어 번뇌하면서 음식을 바로 먹으려고 들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먹지 않을 뿐, 얼마 지니지 않아 먹는다는 점이다. 얼마나 쿨하지 못한가. 고양이 선생의 눈에는 인간의 형태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닭처럼 살아 있는 생물을 죽이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몸서리를 치지만, 배가 고프면 어김없이 패스트푸드점이나 통닭집에 들어가 닭을 뼈까지 발라 먹는 인간이. 심지어 이렇게 닭으로 배운 채운 뒤 , 포만감에 트림을 하면서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인간들은 침을 튀기며 생명 존중을 역설하곤 한다. 얼마나 위선적이고 아이러니한 일인가.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은 너무나 가식적이고 복잡하다. 고양이가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을 산다면,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니, 혹은 겉과 속이 괴리되어 있으니, 인간은 일기 같은 글을 쓴다. 진솔한 글을 통해 순간적이나마 겉과 속을 일치키려는 발버둥인 셈이다. 지행합일이 되어 있는 고양이 선생은 결코 일기 같은 건 쓰지 않는다. 일기란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했거나. 혹은 실천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쓰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