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루함(ABJECTIO) -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 , 작품 : 『무무』. 이반 투르게네프
비루함(abjectio)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한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 스피노자.『에티카』에서
자신을 비하하는 감정보다 우리 삶에 더 치명적인 것도 없다. 스스로 비하하니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라는 감정은 강한 자존감 없이는 쉽게 지킬 수 있는 욕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루한 삶'은 결코 살 만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비루함의 감정, 혹은 그런 정조를 강하게 띠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는 대부분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스피노자가 비루함을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감정이라고 정의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2. 자긍심(ACQUIESCENTIA IN SE IPSO) - 사랑이 만드는 아름다운 기적 , 작품 : 『정체성』. 밀란 쿤데라
자긍심(acquiescentia in se ipso)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에티카』에서
우리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하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경탄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어떻게 내가 가진 치명적인 담점이 그의 눈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그래서 애인은 우리에게 다른 타인이 켤코 줄 수 없는 자긍심을 되찾아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자긍심이 떨어진 사람에게 유일한 치료약은 애인이 생기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금방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충분히 소중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타인이 나를 사랑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3. 경탄(ADMIRATIO) -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로미터 , 작품 : 『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경탄(admiratio)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으로, 이 특수한 관념은 다른 관념과는 아무런 연결도 갖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그 관념 안에서 확고하게 머문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항상 떠날 준비를 하라! 상대방에 대해 항상 자유로워라! 이것만큼 상대방이 나를 무관심해지거나 심더렁해지지 않도록 만드는 확실한 방법도 없다. 떠날 수 있고 머물 수도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의 곁에 머물 수가 있다. 이런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자유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에만 상대방도 우리를 주인으로 대우할 것이다. 모든 경우에서처럼 주인은 관심을 받고, 노예는 무관심에 방치되는 법이니까. "당신이 없다면 나는 살 수가 없어요!" 이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레토릭이지, 결코 사실을 묘사하는 말이어서는 안된다. 사랑에 빠진 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철저하게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상대방의 뜻에 기꺼이 따르려고 하는 노예의 제스처는 글자 그대로 상대도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제스처일 뿐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은 자신에 대한 나의 헌신이 나의 자유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나는 상대방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또 상대방이 그런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상대방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상대도 나를 사랑하다면 내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4. 경쟁심(AEMULATO) - 서글프기만 한 사랑의 변주곡 , 작품 : 『술라』. 토니 모리슨
경쟁심(aemulatio)이란 타인이 어떤 사물에 대해 욕망을 가진다고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 내면에 생기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보통 우정은 동성끼리, 그리고 사랑은 이성끼리 이루어 진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정과 사랑에 대한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정과 사랑의 감정은 어떻게 구부할 수 있을까?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정과 사랑은 모두 어떤 타인과의 만남에서 기쁨을 느끼는 감정, 자신이 과거보다 더 완전해졌다는 뿌듯함이 드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기쁨을 주는 사람과 헤어지게 될 때, 우리는 그제야 우정과 사랑을 구분할 수 있다. 헤어져 있을 때, 우리의 슬픔이 어떤 강도로 발생하는지에 따라 우정과 사랑은 구분된다. 슬픔이 너무나 크다면, 아무리 우정이라고 우겨도 그것은 사랑이다. 반면 슬픔이 생각보다 작다면, 표면적으로는 사랑의 관계라 해도 그것은 우정에 불과하다. 결국 우정과 사랑은 질적인 차이가 있는 감정이 아니라, 양적인 차이, 혹은 정도상의 차이만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가져다주는 타자가 무어냐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일 수도, 동성일 수도, 개나 고양이일 수도, 혹은 슈베르트의 음악일 수도 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경쟁심은 반드시 개입되기 마련이다. 우정이나 사랑의 감정에 빠지면 우리는 상대방이 욕망하는 것을 나도 욕망하는 과정을 꼭 겪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점검하면 좋을 것 같다.
5. 야심(AMBITO)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 , 작품 : 『벨아미』. 기 드 모파상
야심(ambito)이란 모든 감정을 키우며 강화하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이 정서는 거의 정복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욕망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야심에 동시에 묶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고상한 사람들도 명예욕에 지배된다. 특히 철학자들까지도 명예를 경멸해야 한다고 쓴 책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사랑에도 이미 야심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행복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자신의 행복을 알려 모든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싶기 때문이다.
야심은 아카시아나무와도 같다. 너무나 생명력이 강하고 뿌리가 깊어서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아카시아나무 말이다. 그렇지만 아카시아 꽃향기는 어찌나 매혹적인지! 야심은, 적절히 통제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마음속에 다른 수많은 감정들도 자기 결을 따라 제대로 자라날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그만큼 더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6. 사랑(AMOR) -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힘 , 작품 : 『동풍 서풍』. 펄 벅
사랑(amor)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표어는 사랑에도 그대로 관철된다. "주인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사랑의 위기나 비극은 모두 사랑의 정의로부터 설명된다. 우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서로 동등한 주인공이 아닐 때, 사랑은 비틀거리게 된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주인공으로 만들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여자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는데 남자는 더 이상 여자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 순간 사랑은 위태로워진다. 또 다른 위기는 두 사람 이외에 제 3의 것들이 조연의 자리가 아닌 주연의 자리로 떠오를 때 발생한다. 시부모가 무대를 휘두른다든가, 남녀 중의 어느 한 사람의 종교나 정치적 신념이 중심이 되는 순간,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조연으로 강등되고 동시에 사랑의 기쁨도 조금씩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위기를 지혜롭게 그리고 단호하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유일한 문제일 것이다.
7. 대담함(AUDACIA) -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 비밀 , 작품 : 『1984』. 조지 오웰
대담함(audacia)이란 동료가 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하도록 자극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번지점프대에 올라갔다고 하자. 쉽게 점프대 난간에 한 걸음 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창공에 몸을 던질 수도 있고, 뒤로 한 걸음 빼서 안전함을 도모할 수도 있다. 대담하게 창공에 던지는 경우 우리는 '용기'나 '대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고, 그렇지 않고 뒤로 물러날 때 '비겁'이나 '우유부단함'을 가진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용기가 있어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뛰어내린 것 자체가 용기일 뿐이고, 비겁해서 뒤로 물러난 것이 바로 비겁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위기 상황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것처럼 몸을 던졌다면, 지금까지 그는 용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위기 상황,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과감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용기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중요하다. 용기와 비겁은 불변하는 성격과도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 비겁하거나 원래 대담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오직 위기를 감내하려고 할 때에만 용기와 대담함을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가 번지점프대에 서는 것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앞으로 발을 내딛을지, 뒤로 물러날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발을 내딛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사실뿐이다.
8. 탐욕(AVARITIA) - 사랑마저 집어삼키는 괴물 , 작품 :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탐욕(avaritia)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돈에 대한 갈망은 집요한 것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없으면 아무거도 할 수 없는 사회체제 아닌가. 이제 돈은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한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절대적인 수단이 된 것이다. 절대적인 수단은 동시에 절대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이미 돈은 하나의 숭고한 목적으로 승격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돈을 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돌아보면 우리가 대학교와 전공을 정하는 것도, 취업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모두 궁극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한 것 아닌가. 돈만 있으면 여행도, 물건도, 행복도, 사랑도, 심지어는 애인마저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기에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친구가, 애인이 내게 친절한 건 내게 돈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도 나처럼 돈을 신처럼 숭배한다면 말이다. 결국 돈이 없다면 친구든 애인이든 모두 나의 곁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돈을 모은다. 아이러니 하게도 관심과 애정을 받기 위해 돈을 벌려 했지만, 돈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직접적인 관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돈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있다. 최적생계비를 계산하고, 그것을 삶에 관철하는 것이다. "됐어. 이정도면 됐어. 이제 삶과 사랑을 향유해야지." 갈망에서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은 이렇게 내딛는 것이다.
9. 반감(AVERSIO) - 아픈 상처가 만들어 낸 세상에 대한 저주 , 작품 : 『풀잎은 노래한다』. 도리스 레싱
반감(aversio)이란 우연적으로 슬픔의 원인이 어떤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자신이 싫어했던 사람의 모습을 새로 만난 다른 사람에게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이 경우 우리는 그 새로 만난 사람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 안된 일이지만, 그래도 반감이 생기는건 어쩔 도리가 없다. 안타까운건, 첫 만남에서 반감이 생겼을지라도 그가 사실 나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면을 갖춘 사람일 수도 있고, 심지어 행복하게 만들어 줄 사람일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과거 자신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연상시키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반감에 쉽게 사로잡히는 사람들은 과거 망령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모두 기대한다면, 비록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 망령을 쫓아내야만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이 어디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10. 박애(VENEVOLENTIA) - 공동체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 , 작품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박애(venevolentia)이란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사랑의 원리는 무소유의 원리를 토대로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겨울의 찬바람에 애인이 떨고 있다면, 누구나 추위를 무릅쓰더라도 자신의 옷을 벗어 줄 것이다. 이럴 때 두 사람은 최소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공동체의 범위는 우리 자신이 가진 것을 어디까지나 나누어주느냐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아무리 같은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 같은 도시나 같은 국가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저절로 공동체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사랑의 원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공동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커플 사이에도 무소유의 원칙, 사랑의 원리가 희석되고 있는 불행한 시대다. 합리적인 것처럼 쿨하게 더치페이를 외치고, 여자도 남자와 동일하게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바닥에는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강한 소유의 의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커플이나 부부 사이에도 사랑의 원리가 훼손되어 있는데, 지역이나 국가 공동체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이런 시대에 전체 인류로 확장되는 사랑의 원리, 즉 박애의 정신이 어떻게 제대로 평가될 수 있겠는가. 연애에서부터라도 차근차근 사랑 연습을 하자.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어주는 것,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시대니까.
11. 연민(COMMISERATIO) - 타인에게 사랑이라는 착각을 만들 수도 있는 치명적인 함정 , 작품 :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연민(commiseratio)이란 자신과 비슷하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타인에게 일어난 해악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불행히도 연민은 켤고 사랑으로 바뀔 수 없다. 타자의 불행을 감지했을 때 출현하는 감정이기에, 연민의 밑바닥에는 다행히 자기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것, 나아가 불행한 타자를 도울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애인과 친구의 가치를 알려면, 사실 내가 고통에서 빠져 있을 때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내가 가장 행복할 때에 진짜 애인인지 가짜 애인이지, 혹은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당신의 행복을 함께 행복해 하고 당신의 불행을 함께 불행해하는 사람이어야만이 여러분은 자신에게 애인이나 친구가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당신의 불행을 위로 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당신보다 행복하다는 사살에 뿌듯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혼했거나 실직했다고 치자.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않은 친구들 혹은 직장 불평불만이 많은 친구들이 몰려들어 당신을 위로할 것이다. 그렇지만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그나마 자신에게는 가정과 직장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게 인간이다.
12. 회한(CONSCIENTIOE) - 무력감을 반추도록 만드는 때늦은 호회 , 작품 : 『전락』. 알베르 카뮈
회한(conscientioe)이란 희망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정말 성숙하고 강해졌다면 결코 회한의 감정이 그를 유령처럼 따라다지니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지사는 하나의 전설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로 기억될 테니까 말이다. 결국 회한에 빠진 사람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고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회한이라는 슬픈 감정을 떨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중에 회한이 없도록 지금 과감하게 선택하고 당당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10년 뒤에 나는 이렇게 할 것이다. 그러고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렇게 할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의 무기력과 비겁에 맞서 싸운다면, 어느 사이엔가 과거의 회한은 밝은 태양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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