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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 길을 밝히다(독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by 공자 (공영효) 2021. 7. 21.

재빨리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 승리한다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질 들뢰즈(Gilles Deleuze . 1925 ~ 1995)

프랑스의 철학자. 20세기 프랑스 현대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하나로, 자크 데리다 등과 함께 포스트 구조주의 시대를 대표한다.

 

가장 기본적인 파라노이아형의 행동은 '정주定住'하는 것이다. 가정을 이루고 그곳을 중심으로 영토의 확대를 꾀하는 동시에 재산을 많이 축적한다. 아내를 성적으로 독점하고 태어난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가정의 발전을 위해 애쓴다.

이 게임은 도중에 그만두면 지는 것이다. 그만두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파라노이아형이 되고 만다. 병이라고 하면 병이지만, 근대 문명은 틀림없이 이러한 편집증적 추진력에 의해 여기까지 성장해 온 것이다. 그리고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한, 힘들기는 해도 그 나름대로 안정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사태가 급변하기라도 하면 파라노이아형은 약하기 그지 없다. 자칫하면 성채에 틀어박혀 전력을 다한 끝에 목숨을 바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이때 '정주하는 사람' 대신에 등장하는 것이 '도망치는 사람'이다. 이 녀석은 무슨 일이 있으면 도망친다. 버티지 못해 일단 도망친다. 그러면 몸이 가벼워야 한다. 집이라는 가장으로서 처사식에게 군림할 수는 없으니 그때마다 마침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이용하고, 자손도 적당히 뿌려 두고 그다음은 운에 맡긴다. 의지가 되는 것은 사태의 변화를 인식하는 센스, 우연에 대한 직감, 그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스키조프레니아형이라 할 만하다.                     -- 아사다 아키라 [도주론]

 

파라노이아형이 환경 변화에 약하다는 지적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현재 기업이나 사업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 상황을 개인의 아이덴티티 형성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어떻까? 직업은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하나의 이이덴티티에 얽매인다는 것은 하나의 직업에 얽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과 사회의 두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아이덴티티에 집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얻을수 있다.

우리는 '일관성 있는' , '흔들리지 않는' , '외길 십 년'과 같은 말을 무조건 칭찬하고 보는 어수룩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에 사로잡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편집증적으로 고집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

 

아사다 아키라가 지적한 두 번째 핵심은 도망친다는 점이다.

파라노이아형은 정주하는 사람, 그리고 스키조프레니아형은 도망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정주하는 사람에 대치시키려면 이주하는 사람이라든가 이동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도망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사용했다. 이 지적은 매우 예리하다. '도망친다'는 딱히 명확한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벗어나겠다'를 뜻한다.

이 뉘앙스, 즉 '반드시 분명한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곳은 위험할 것 같으니 일단 움직이자'라는 마음 자세가 스키조프레니아형인간의 특징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 사회는 아직 한곳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꾸준히 노력하는 파라노이아형을 예찬하고, 계속해서 싫증을 내고 변화를 거듭해 가는 스키조프레니아형을 비하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직업관은 전형적인 스키조프레이나형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파라노이하 예찬, 스키조프레니아 비하'라는 직업관이 사회의 혁신을 정체시키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 사회적인 가치관이 스키조프레니아형의 전략을 채택하려고 할 때 큰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도망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세상이 평판에 신경을 쓰느라 침몰해 가는 배 위에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그야말로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다른 수많은 사람이 "일단 이 배에 탄 이상 마지막까지 애써 봐야지!"라며 벼르고 있을 때 "나는 이 배와 함께 가라앉을 생각이 없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나서 도망치려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할지 상상해 보자.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를 대비시켜 보면, 후자는 전자보다 경박하고 나약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재 세계에서는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야 말로 파라노이아 유형을 지향하고 용기와 강이함을 지닌 사람만이 스키조프레니아 유형의 인생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