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크랙 등반 - 베다우
와이오밍의 넓은 크랙의 혹독한 시련
Vedauwoo Fats
캐머론 크로스가 Offwidth 202의 마지막 크럭스를 하기 위해 크랙 속에 몸을 억지로 구겨 넣고 있다. Letf Tube (5.9+), the Nautilus.
정말 가치 있는 등반 형태는 고산 등반뿐이라고 어떤 클라이머들은 주장한다. 고산(alpine) 등반의 고난과 헌신과 위험의 가치를 그 근거로 대면서 말이다.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베다우(Vedauwoo)로 와서 이곳의 넓은 크랙에 한번 붙어보라고.
고난이라구요? 몸의 모든 근육 조직을 바깥쪽으로 밀어대면서 얼굴과 무릎과 팔꿈치를 40 호 짜리 샌드페이퍼 같은 화강암에다 비비고, 고기 갈듯 해봅시다. 아마, 몇 시간이 지나도 여러분은 조금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헌신? ‘루실’(Lucile)을 등반하고자 했던 제이 앤더슨의 오디세이를 예로 들어 봅시다. 수없이 찾아오고, 또 찾아와서, 시도에 시도를 거듭하며, 1 밀리미터 전진할 때마다 그의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마음가짐과 동기와 신념을 철저히 되돌아보는 자기 성찰에 (soul-searching) 다 써버렸다 - 무려 십 년간이나.
위험이라고요! 오프위드(offwidth) 클라이머는 늘 파트너를 잃는다. 밀어 넣은 커다란 캠의 끝이 벌어지고, 확보물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상태로, 확보물 위로 9 미터나 올라와 있는 경우가 흔하다. 두려움 또는 순전히 그 힘든 노력 때문에 심장 발작이 생길 가능성도 매우 높다. 자기가 토한 음식 때문에 질식할 수도 있다. 무릎이 크랙 속에 꽉 끼면, 다리를 잘라야만 할 때도 있다. (바위에 낀 팔을 자른) 에어론 랠스턴처럼 말이다.
록키 마운틴 웨스트의 어프위드 중심지인 베다우에서는,사람들이 황소에게 받히는 수도 있고, 남부 백인 부랑자(redneck)의 총에 맞을 수도 있으며, ‘라라미 바아’에서 너무 허풍떨다가는, 진짜 카우보이에게 한 펀치에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이것이 취향에 맞는다고 느끼는 분은 베다우로 찾아오시라. 라라미 동쪽 15 마일 지점에 있는 베다우는 와이오밍 주 남동부의 고원 지대 평야 위의 I-80 도로를 막 벗어난 곳에 있으며, 풍화작용에 의해 둥그스름한 형태를 갖게 된 화강암 바위의 오아시스다. 자연의 변덕스런 조화가 넓은 크랙 바위를 잔뜩 만들어 냈는데, 나팔처럼 벌어진 플레어(flare) 크랙이 많고, 대개 피부를 먹어치우곤 하는 장석(長石, feldspar) 입자로 도배되어 있다.
대부분의 클라이머는 와일드 아이리스나 데블스 타워 같은 좀 덜 끔찍한 곳으로 가기 위해 이 지역을 우회한다. 그들에게는, 베다우의 포플러가 늘어선 길, 폰데로사 소나무 숲, 비버의 연못,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매나 독수리, 영양(羚羊); 사슴, 엘크, 그리고 심지어 가끔 나타나는 큰 ‘무스’ 들까지도 그저 그들의 차창에 2 분 간 비치는 흐릿한 장면에 불과하다.
앤디 존슨이 A급 리스트에 올라 있는 대표적 난제 5.12 Lucille에서
오랜 사용을 통해 효과가 입증된 '치큰 윙'/크림프 그립/인상 쓰기 등을
총동원하고 있다.
베다우를 막상 등반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루트만을 고른다. 페이스 루트나, 손가락 크랙이나 손 크랙, 그리고 대개는 넓은 크랙 중에서도 쉬운 것만 찾는다. 영리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마조키스트들은,투박한 신과 무릎 보호대와 너덜너덜한 긴 소매 샤쓰와 엄청난 양의 테이프와기기묘묘한 곳에 상처 딱지 투성이인 모습으로, 베다우의 가장 험상궂은 곳을 찾곤 한다.
처음으로 클라이머들이 베다우를 찾은 것은 1940 년대 후반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그들이 이 단일 암벽 지층(formation)의 꼭대기에 이르는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찾았는데, 주로 가느다란 홈이나, 침니(chimney)를 따라 가는 길이었다. 애초부터 베다우 등반 루트는 넓은 크랙과 전신을 다 쓰는 루트이었다.
좀 어려운 크랙은 1970 년대 중반부터 함락되기 시작했다. 기록된 역사는 애매하나, 그 곳의 토박이들과 콜로라도 주 프런트 레인지에서 찾아오는 클라이머들이 함께 참여했다. 보울더 시티와 콜로라도 스프링스 출신인 마크 헤쎄가 1972 년, Main Street라는 기막힌 클래식 루트인 5.10a 다이히드럴(diehedral)을 등반했다. 이곳은 오프위드를 잘 해보고 싶은 클라이머들이 순회해야 할 루트 중에서도 필수 루트다. 댄 맥루어와 헤쎄가 그 다음 해에 Horn‘s Mother라는 5.11 대의 주먹 크랙과 오프위드 크랙을 자유 등반했다. 또한 1973 년에는 ‘프렌드’의 발명자인,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레이 자딘이, 베다우의 가장 전형적인 오프위드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뱃머리(prow)처럼 튀어나온 '노틸러스‘ 암석 지에 있는 악명 높은 Torpedo Tube를 (가이드북에 따라 5.9+ 또는 5.10d로 매겨짐) 초등했다.
이와 같은 시기에, 미조리 출신인 덕 케언스가 와이오밍 대학에서 기계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라라미에 왔고, 많은 새로운 라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클라이머가 없어, 꽤 편한 분위기였다”고 케언스가 말한다. 그러나 등반은 별로 편하지 않았다. 스프링 식 확보 장비가 아직 발명되지 않아, 바깥으로 나팔처럼 벌어져 있고 두 면이 평행을 이루고 있는 크랙에 확보물을 설치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죽어라 하고 매달린 채, 간신히 헥스 박을 곳을 찾느라고 고생했다”고 케언스가 말한다. “캠이 없어, 그 초창기의 많은 등반은 상당한 대담성을 필요로 했습니다.”
1977 년에, 제이 앤더슨이 라라미에서 공부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왔고 케언스와 팀을 이루었다. 이 두 사람이 그 해에 Max Factor라는 클래식한 핑거 크랙을 개척했다. 케언스는 손가락 크랙과 손 크랙을 선호했으며, 필요하면 어프위드에도 도전하긴 했으나, 앤더슨은 “탐욕스런 오프위드 중독증“에 ("gluttonous jones”) 빠졌음을 자인한다. 그는 넓은 크랙을 찾아 나섰고, 험악할수록 더 좋아 했으며, 이미 개척된 클래식 루트들을 해치운 후에는, 몸을 타이트하게 끼워야 하는 침니 루프(chimney roof) 문제의 십년에 걸친 공략을 시작했다 - 그가 이 루트를 루실(Lucille)이라고 명명했는데, ‘루실’은 블루스의 매스터인 B.B. King의 기타 곡에서 따온 이름.
앤더슨은 ‘루실’을 끝내지 못하고 라라미를 떠났으나,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매년 돌아와서 그것을 해결코자 무진 애를 썼다. 그는 또한 서부를 여행하며, 당시 개척되어 있는, 가장 어려운 크랙을 찾아 나섰다. 제이가 ‘루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그 십 년간, 장비가 크게 발전되었다. 1979 년 처음 몇 번 시도할 때는, 아슬아슬하게, 끝만 걸리는 튜브 형 초크로 (tube chocks) 확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rickety 그 다음 몇 년 동안에 그는 뻑뻑하고 커다란 수제(手製) 캠들을 갖추게 되었다.
현대적인 빅 브로와 빅 두드를 (Big Bros and Big Dudes)를 쓰며, 그와 마이크 프리드리히가 드디어 ‘루실’을 1988 년에 완등 함으로써 그의 마음이 개운해졌다. 오프위드 역사 상, 앤더슨의 뛰어난 공헌 중의 하나는 스카펠리(Scarpelli)라는 이름의 와이오밍 출신의 클라이머를 넓은 크랙에 심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베다우의 클라이밍 세대는 대략 4 년마다 바뀐다고 한다 - 클라이머들이 ‘라라미’대학을 졸업하는데 걸리는 시간. "내가 대학 끝내는데 8 년이나 걸렸기 때문에, 봅 스카펠리에게 두 명의 파트너를 제공한 셈이라는 생각을 나는 즐기곤 하죠“라고 제이가 주장한다.
자, 이젠 모두 좀 안심해도 되겠지. 제레미 메들리가 Trip Master Monkey (5.12b)에서 스태킹을 하고 있다.
스카펠리의 가느다란 다리, 커다란 주먹, 그리고 호전적인 태도가 그를 넓은 크랙을 위해 타고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지역 중심부의 최고의 크랙을 이미 다 등반한 스카펠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베다우의 외진 곳을 조사하면서, 많은 새로운 라인을 찾아냈다. 그의 초기의 발견 중 가장 훌륭한 곳은 the Roof Ranch 지역에 있는 한 오프위드 루프(roof)였다. 그가 그 2.4 미터 루프의 아래 부분까지 등반한 후, 그 위에 불쑥 나타나는 15 cm 크랙에서 암바(arm-bar)를 해보다가,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그 등반 라인은 등반불가로 보였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의 요세미티 여행 중, 랜디 레빗과 토니 야니로가 창안한 손 겹쳐 쓰기(hand stacking) 기술을 스카펠리가 보고, “아, 저거야!”라고 생각했다.
Citadel area의 Worm Drive 근처의 이름 없는 5.9에서 '와이드 칸트리' 안으로
'힐토'(heel-toe) 재밍 동작을 한다.
베다우로 돌아온 스카펠리가 선등 시 확보를 위해 볼트 세 개를 박았다 (당시 아직 큰 캠이 발명되지 않았음). 손 겹쳐 끼우기(hand-stack) 법을 며칠 간 배운 후, 발로 캐밍하고 무릎 끼운 자세로 (foot cams and knee bars) 거꾸로 매달려, 드디어 스카펠리가 그 시퀀스를 풀었다. 그 루트를 스퀏(Squat)이라고 명명하고, 5.12 등급을 매겼다. 이것이 1983 년 당시, 베다우에서 가장 어려운 크랙이었고, 그 후 여러 해 동안 그 루트를 그가 여러번 올랐다.
스카펠리의 터프한 퉁명스러움과 가식 없는 태도는 베다우의 전설이다. 언젠가 그가 오프위드와 주먹 크랙 루트인 Horn's Mother라는 5.11a 클래식 루트를 단독 자유 등반으로 f 쏜살같이 올라갔는데, 그 이유는 그가 데렉 허시라는 유명한 솔로 등반가가 그렇게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루트를 솔로로 한 사람은 데렉 허시가 아니라 제이 앤더슨이었음이 나중에 드러났음). 그가 땅에 내려오자, 한 사람이 그에게 뛰어와서, 도무지 인정하기 어렵다는 시선을 그에게 던지고 또 다시 Horn's Mother를 돌아본 다음, “당신도 유명한 사람(somebody)인가요?”라고 물었다.
“아뇨, 나는 무명 인물(nobody)인데요”라고 그가 답했다. “이곳의 등반지마다 나 같은 사람이 서너 명씩은 있어요, 우리는 대단한 클라이머가 아니죠,.”
스카펠리가 그의 1989 년도의 대표적 난제인 Trip Master Monkey의 - 체조적인 오프위드 루프 - 해결에 착수했을 때, 딕 칠리가 (Dick Cilley)가 베다우에 들르곤 했다. 칠리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여기저기 빠르게 돌아다니는, 등반 장비 세일즈맨이었다 (“여봐요, 초크백 살래요? 중고 로프 사겠어요? 캠은 어때요?). 칠리가 ”당신이 저쪽 루트 위에 있는 걸 봤는데, 거기는 어떤 곳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스카펠리가 열 받았다.
“거기는 전혀 당신이 관심가질 만한 곳이 아니야”라고 스카펠리가 답했다 (???).
“그의 말이 내 성미를 돋구었다”고 스카펠리가 말했다 ‘좋아, 젠장, 저 빌어먹을 놈을 내가 꼭 끝장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Trip Master Monkey를 말하는 건지 딕 칠리를 말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둘 중 어느 것이든 간에, 그 일이 스카펠리가 필요로 했던 보다 큰 동기를 제공했다. 수선이 잘못된 그의 신발도 도움이 되었다. “내가 Trip Master를 했을 때, '피이어즈'라는 암벽화 수선업체가 내 암벽화를 엉망으로 창갈이하여, 내 신을 크고 뻣뻣한 보트처럼 바꿔놓았습니다. 당시 나는 가난했는데, 그들이 내 신을 망쳐 놓았으므로, 그 업체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트가 the Trip Master 크랙에 꼭 맞아서, 결국 그 신이 ‘하늘의 선물‘이 되고 말았죠”라고 스카펠리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스카펠리에게 몇 명의 후계자가 있었으나,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브랫 잭슨이었다. 그들의 파트너 시절에, 스카펠리가 잭슨에게 정기적으로 터프한 사랑을 쏟아 부었다. 어느 날, 잭슨이 Cup Cake라는 루트를 솔로로 올라갔다. 이 곳은 ‘노틸러스’ 근처의 커다란 보울더(boulder)에 있는 짧은 5.10a 루트로서 손과 주먹 크랙이었다. 그가 7.5 미터 높이의 크럭스에서 망설이다가, 그 루트를 다운 클라임 하여 후퇴하고 말았다. 화가 난 스카펠리가 그 크랙에 휘딱 올라붙어, 그의 ‘테니’ 브랜드 릿지화 끈도 묶지 않은 채, 잭슨이 가장 높이 올라갔던 곳까지 솔로 등반한 다음, 마구 몸부림치며 “난, 겁나요! 난, 겁난단 말이야!”라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그가 정색을 하고 잭슨의 얼굴을 째려 본 후, 그 크랙 꼭대기까지 등반했다.
앤디 존슨이 Mean Green Offwidth Machine (5.11d)에서 주먹 두 개
겹쳐 쓰는, 두렵기 짝이 없는, '다블 피스트 스택'을 열심히 하고 있다.
잭슨은 이런 식으로 시달림 받아도 올바른 반응을 보였다. “봅 스카펠리와 내가 서로 말도 안하고 지내는 사이였을 때도, 그를 정말 존경했기 때문에 그의 기준에 부끄럽지 않게 내가 등반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일찍이 그런 식의 강한 의욕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잭슨이 말한다.
그와 스카펠리가 “말도 안하고 지내는 사이였을 때, 내가 봅을 존경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의 루트에 내가 전력을 다 쏟는 것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재등된 적이 없는 그 Trip Master Monkey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그가 두 번째 완등자가 된 후, 잭슨이 스카펠리에게 연락했고, 그들의 우정이 다시 회복되었다.
스카펠리와 잭슨의 파트너쉽은 the Belly Full of Bad Berries라는 루트의 초등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 루트는 유타의 인디언 크릭에 있는 5.13a 또는 b 루트로서, 아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오프위드일 것이다. “브랫과 내가 콜로라도 돌로레스에서 마루를 깔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집에서 보드카 5분지1 갤런을 마시면서, 죤 웨인이 마라톤 하는 장면을 TV로 보고 있었습니다. 브랫이 내 집에 오자 우리는 또 다시 그 보드카 5분지1 갤런을 더 마시면서, 밤새 그 Duke라는 TV 프로를 보았다. 브랫의 두 눈이 완전히 안쪽으로 몰린 모들뜨기가 되었고, ‘자네 뱃속이 딸기로 가득 찬 것 같군, 방랑자여’ 라고 내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루트의 이름이 정해졌다. [역주. Belly full of berries. '봅과 딸기‘라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딸기 잔뜩 먹은 봅이라는 어린 토끼]
그 루트를 처음 한 날, 스카펠리의 이두박근이 떨어져 나가, 겨우 확보나 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루트에 착수한지 닷새째 되는 날, 잭슨이 거의 끝낼락 말락 했을 때 두 사람 다 그의 발목이 푹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포기하려고, 절뚝거리며 차로 돌아가려 했다. 스카펠리는 믿을 수 없었다. “뭐라고!? 이걸 하느라고 내가 닷새나 빌레이를 보았는데 돌아가자고? 네가 거기에 다시 안 붙으면, 혼쭐 낼 거야.” 잭슨이 그 다음 날 그 루트를 완등 했다. “그 점에 대해 스카펠리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낍니다”라고 잭슨이 말한다.
베다우의 어려운 어프위드의 재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여러 해가 지났으나, 작년 여름, 한 젊은 클라이머들의 특공대가 - 그들에게 내가 “팀 오프위드 2004“라는 별명을 붙였음 - 이 '탐욕스런 오프위드 중독증‘에 (caught the gluttonous offwidth jones) 걸렸다. 이 새로운 유파의 테크닉은 전보다는 좀 더 크랙 밖에 많이 몸을 두면서, 손 겹쳐 쓰기와 발 끼우기 등의 (hand stacks and foot cams) 전통식 오프위드 테크닉 뿐 아니라, 어려운 크림프 자세와 다이노를 (hard crimping and dynos) 같이 사용한다.
라라미 토박이인 저스틴 에들(Justin Edl)은 꽤 어려운 크랙 루트를 상당히 빨리 해결했다. “내가 오프위드에 반한 것은, 그것이 다른 것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프위드에서 요하는 ‘킥 스루’ (kick-throughs, 未詳, 발로 차고 올라가는 동작?) 같은 거친 테크닉에, 그리고 파격적인 (out-of-the box) 사고방식에 강한 흥미를 느낍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베다우의 오프위드 도전은 Big Pink 같은 지구력-펌핑이 오는 구식 크랙에서부터 (‘에들’이 이 루트 꼭대기에서 토했음 puke) Trip Master Monkey 같은 와일드하고 서커스 같은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 신세대는 후자를 선호한다. Big Pink는 5.11b이고 Trip Maser는 숫자 등급 상 완전히 한 단계 더 높지만, ‘에들’은 이 둘이 거의 똑 같이 어렵다고 본다.
제니퍼 테일러가 노틸러스의 힘들고 긴 5.11a Maxi Lash에서 혼쭐이 나고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에들’도 등반 파트너가 없어서 고생한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는 주로 볼더링을 했다. 1980 년대와 1990 년대에, 스카펠리는 베다우의 볼더 문제를 많이 등반 했다 - 볼더링하는 바위(boulder) 안의 진짜 크랙 또는 두 개의 둥근 보울더(boulder)가 나란히 붙어 있을 때 만들어지는 천장 밑에 벌어진 크랙(roof flare)이 있는 루트. '에들‘이 이란 문제들을 대부분 등반했고 몇 개를 더 찾아냈다. 지금, 베다우에서는 오프위드 볼더링의 “붐”이 일고 있다.
“오프위드 팀 2004”의 또 한 명의 멤버가 바로 콜로라도 포트 콜린스 출신의 제레미 메들리라는 클라이머다. 그는 V10 보울더 문제에서부터 데날리 같은 큰 산의 루트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등반 경험을 갖고 있는 클라이머다. 덕트 테이프로 붙여 놓은 바지를 입고, 하드(hard) 스포츠클라이머의 체격을 갖고 있지만, 그는 베다우의 전통식 등반을 선호한다. 메들리의 Trip Master Monkey 등반은 이제까지 내가 본 등반 중 매우 인상적인 편에 속하는데, 현대적인 페이스 등반과 체조적인 오프위드 등반(offwithing)이 기막히게 잘 섞여 있는 등반이었다.
베다우의 오프위드 등반을 찾아 나선 또 한 명의 젊은 사이코가 있는데, 그 해 늦은 여름에 ‘에들’과 ‘메들링’에게 합류한 앤디 죤슨이다. 2002년에 죤슨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주로 ‘오프로드’로, 카나다에서 멕시코까지 갔는데, 약 20 킬로그램의 트레일러를 끌고 갔으며, 하루 120 마일까지 페달을 밟은 날이 많았다. crank off 그 역시 많은 알라스카 알파인 루트를 한 바 있는 만능 클라이머이다. 여기서 하나의 패턴을 볼 수 있었다: 완전히 한 세대의 젊은 고산 등반가들이 고산을 멀리 하고, 그보다 더 혹독한 하드 어프위드(hard offfwidth)의 도전을 택함을.
지난 가을, 존슨이 스퀏(Squat)을 끝냈고, 또한 두 번째 시도 만에, 지난 16 년 중 세 번째로 Lucille을 오른 사람이 되었다. “베다우 루트들이 요세미티나 인디언 크릭처럼 길었다면, 아마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크랙이었을 겁니다”라고 존슨이 말한다. “베다우 크랙을 등반할 수 있다면, 아마 다른 곳은 간단하게 보일 겁니다.”
7 년 전, ‘클라이밍’ 지에 내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 차세대의 추구가 다양해짐에 따라, 그 중 일부는 넓은 크랙에 매혹될 것이고. 언젠가는 그들의 엄청난 기술에 오프위드 매스터들의 트릭과 보디랭귀지(body language)를 추가하기만 하면, 오늘날의 ‘하드 어프위드’가 실은 그렇게 나쁘지 않음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일군의 재능 있는 클라이머들이 - 소수이기는 하나 - 어프위드 난제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장차 다음 단계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catcth the eyes 탁월한 체력, 수준 높은 테크닉, 그리고 현대적인 안목을 가진 젊은 클라이머가 머지않아 진짜 ‘익스트림 와이드 크랙’ 몇 개를 완등 할 것으로 보인다 - 아마 최근 발견된, 남부 유타의 아치(arche)의 천정 밑에 있는 오프위드 프로젝트 underside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우리는 진짜 5.14를 보게 될 것이다. '팀 어프위드‘여, 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스카펠리의 말대로, 핸드 스태킹(hand stacking)은 하체
테크닉이다. 5.12b Squat의 매화타령 하는 지점 가까이 있는
저스틴 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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