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규철]
그랑드 조라스 워커봉(4208m) 등반기
# 북벽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2012년 마터호른(4478m)을 등반했었다.
그해 북벽을 찾았으나 많이 부족하여 몽땅베르역에서 북벽을 바로 본 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2017년 건이 형님과 영효와 함께 북벽을 다시 찾았다. 계속되는 궂은 날씨 때문에 그때는 프랑스 남부 베흐동계곡과 지중해 근처 꺄시스를 등반하고 돌아왔었다. 몽땅베르역에서 렛쇼산장까지만 걸어가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2022년 다시 북벽을 찾았다. 어느듯 10년이 흘렀다. 건이 형님과 형윤이도 세 번째, 그립고 북벽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였다. 간절함이 남다른 영효와 처음 찾은 친구 종화가 힘을 더한다.
# 첫 비박(22. 07. 30.)
몽땅베르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로 알핀로제 숙소에서 샤모니역까지 이동하여 역에 도착하니 주변이 너무 한산하다. 오전 8시 10분인데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한 걸까?
확인해 보니 기차선로의 문제로 내일까지 운행하지 않는단다. 그다음 날도 알 수 없단다. 당혹감이 몰려왔다. 의논 끝에 걸어서 벽 앞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다들 밝은 표정!
샤모니를 출발하여 메르 디 글라스 빙하를 따라 렛쇼산장 아래에서 빙하수로 식사하고 오후 8시쯤 벽 앞에 도착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 최대한 낙석의 위험을 피해 빙하 위에서 비박을 했다.
# 본격적인 등반(22. 07. 31.)
오늘 모두 4팀(10명)의 등반팀이 붙었다. 새벽 5시
베르크슈렌트 때문에 우측 10m의 우측설벽을 따라 올라 좌측 기존 루트로 등반을 시작하는 로컬로 보이는 3명의 등반팀을 선두로 그 뒤를 스위스 팀 남녀 두 명, 그리고 에이스조 형윤이와 영효가 그 뒤를 이어 오르고, 건이 형님과 종화와 내가 마지막으로 워커봉을 향해 행복한 오름 짓을 시작한다. 건이형님과 형윤이는 디에도르까지 갔었던 2015년의 기억이 떠올랐으리라
낙석
! 낙석!
따뜻한 날씨로 얼어서 벽에 붙어 있던 돌들이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작은 손길에도 떨어지는 것이다.
등반자의 조금만 실수에도 낙석은 계속 발생한다. 조심해야 했다.
오늘은 늦어도 삼각설전까지 가리라 다짐해 본다.
4피치 정도 올랐을까? 형윤이와 영효가 스위스 팀을 앞서가고 있었다.
우리는 스위스 팀 후등자 뒤를 이어 슬랩으로 올랐고 여기는 얼음 위에 모래를 뿌려놓은 듯하다.
최대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 팀은 확보지점에서 나에게 우측으로 돌아 위에 캠을 설치하고, 트레버스해서 건너오라고 도움을 주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위험해 보였을까?^^
다음 피치는 좌측사선으로 등반하는 구간이었으며, 약 15m 지점에 영효가 빌레이를 보고 있었다.
스위스팀과 잠시 얘기하는 사이 어디서 왔는지 헬기가 우리 머리 위를 계속 선회하고 있다. 무슨일일까? 사고인가? 잠시 후 등반자를 하나둘 태우더니 샤모니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오기를 두어 번 더 완전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대들은 등반 계속해라! 우리는 우리 할 일 한다. 이런 느낌!)
스위스 남녀 두 분은 이곳에서 내려가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 5명만 북벽에 남는다. 심란하다.
등반에 집중해야겠다. 속으로 우리 팀은 하산할 때까지 별일 없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작별 인사를 뒤로하고 심란해진 마음을 잡고 또 잡아 등반을 시작하자 영효는 오르고 보이질 않았다.
종화에게 바로 밑에서 확보를 봐달라 부탁하고, 위로 직상하여 약 6~7m 올랐을까?
그런데 등반성이 좀 높아 보이는 이 느낌은 뭐지?
레뷔파크랙(?+/ AO)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등반이 어려운 곳은 디에도르, 검은 슬랩, 붉은 침니 등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루트는 모두 위에 있는데 현재 시점에서 싸늘한 이 느낌이란!
잠시 캠에 확보하고 주위를 살폈다. 위로는 6~7m 위에 슬링이 걸린 하켄이 있었다. 다시 아래를 보자
종화가 있는 확보지점을 약 7~8m 지난 지점에 확보용으로 보이는 슬링이 있었다. 아차! 조금 더 올랐어야 했던 것 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찍 꺽어 오른 듯하다.
영효가 확보한 지점은 내가 오른 지점에서 조금 더 지나가야 있었다.
서둘러 클라이밍 다운하여 영효가 있었던 곳으로 돌아와 직상하여 가볍게 오른다.
형윤이와 영효가 레뷔파크랙을 등반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레뷔파크랙에 도착하자 곧바로 크랙에 붙었다. 그런데 한 동작이 발목을 잡았다.
실력 부족인가, 맨탈 부족인가,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마이크로 캠이나 너트가 간절히 그리웠다.
몇 번을 비비다가 마음만 상하고, 여기서 불필요하게 힘을 빼봤자 손해라는 생각에 그냥 배낭을 벗어 퀵에 걸어두고 오르기로 했다. 배낭이 없자 가볍게 올랐, 위에 있는 확보물에 퀵하고 내려와 다시 배낭을 메고 올라와 마무리하고 그 후 등반은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올랐다.
시간은 벌써 정오를 넘어서고 있고, 오늘 목표한 삼각설전은 아직 멀었다.
전체를 40피치로 본다면 현재 위치는 10피치를 조금 넘어선 상태(약 1/3 정도)인데 내 마음만 앞서고 있었다.
형윤이와 영효가 교대로 무난하게 75m 디에도르까지 등반을 잘 이어가고 있었다. 고맙다.
내가 디에도르에 도착할 즈음 영효는 하단을 등반하고 형윤이가 빌레이를 보고 있었다.
함께해서 좋은 사람들이다. 행복한 마음과 더불어 윤이와 물 한잔 마시며 다음 일정을 의논했다.
한 피치라도 더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재의 몸 상태와 비박지를 고려하여 검은 슬랩 밑에서 비박을 하기로 했다.
등반은 계속되었고, 어느 듯 저녁 7시를 넘어서자 검은 슬랩 아래에서 형윤이와 영효가 오늘의 마지막 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밑에서 보니 오늘 등반 중 눈이 제법 쌓여 있는 것으로 보였고, 둘은 등반하면서도 열심이 눈을 치우며 등반하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등반하면서 동생들의 아낌없는 배려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내일을 위해 우리는 아래에서, 둘은 세피치 정도 더 등반하여 비박을 했다. 각자 최대한 편하게 자리를 잡아서 잤다. 우리는 다소 낙석의 위험이 있었지만 전망으로 긴 하루의 피로를 씻었다.
수많은 밤하늘에 피어난 별들과 동침하며 이 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 험난한 등반길(22. 08. 01)
기다리던 아침은 왔고 무전으로 앞 팀과 교신, 식후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가볍게 건조 비빔밥 2개로 셋이 나눠 먹고 출발했다. 오늘은 꼭 정상 등정하리라는 굳은 결심을 했다.
두 피치 정도 올랐을까?
검은슬랩(?+/ AO) 앞에 도착하자 형윤이가 힘들게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루를 등반해야 했었다. 시간과 체력안배 차원에서 영효에게 자일 고정을 부탁한다.
한 피치만 시간 단축을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검은슬랩을 지나고 회색 암탑까지 오르자 길이 복잡하다. 사선으로 갈 것인지 능선으로 올라설 것인지를 고민했다 등반선을 잡기 위해 기존 하켄을 찾았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등반이 어려워 보이는 구간은 아닌 듯하여 사선으로 올라 좌측으로 직상하여 능선에 올라섰다.
조망도 좋고 확보지점도 있었다. 저 멀리 붉은 침니와 붉은 암탑도 보였다.
회색 암탑은 전반적으로 크랙도 많고 확보지점도 많아 보였다. 다만 하켄의 거리가 멀고 오래된 폐 자일이 많이 버려져 있어 코스를 선택함에 있어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그곳에서부터 삼각설전까지는 가볍게 오른다.
형윤이는 도착하자마자 아픈 발가락으로 힘들어한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안타깝다.
내가 조금 위에 확보지점을 만들어 빌레이를 보고 있을 때 영효가 올라왔다.
급똥의 위급함을 호소하지만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리엑션이 커졌으나 어떡하랴 도리가 없다.
종화가 올라오자 바로 붉은 침니를 향해 등반을 시작했다. 두피치 정도 오르자 바로 눈앞에 있다.
침니부터 등반자들이 낙석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 각자 알아서 안전하게 오르는 것이 최선이다.
눈과 얼음이 있는 구간이었으며, 등반자는 상황에 맞게 빙벽화와 크램폰을 착용하고 등반을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어 보였다. 조심해야 했다.
그냥 암벽화를 신고 좌측 암릉 구간을 올라 약 50m씩 3피치 정도 올라 붉은 암탑 앞까지 오른다.
여기서 이번 등반의 최대 고비를 여기서 만난다.
사실 침니 쪽은 눈과 얼음이라 빙벽화에 크램폰이면 쉽게 갈 수 있었다.
암벽화를 신고 좌측 암벽지대로 올라온 나는 군데군데 쌓인 눈과 얼음조각을 손으로 치우며 조심스럽게 어려움 없이 암탑앞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암탑앞으로 가르면 여기서 침니를 지나 우측으로 건너야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작은 발 홀드와 사선으로 된 사이드 홀드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은 클림프 홀드에 의지한 체 암탑쪽으로 건너가기 위해 침니쪽으로 갔으나 아뿔사 거리가 멀다.
한동작이 아쉽다. 추락할 것 같다.
젠장 암벽화로 킥 킹도 할 수 없다.
잡고있는 손가락 하나 정도의 클림프 홀드는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다. 반사적으로 침니 좌측의 사이드로 된 클림프 홀드를 잡고 빠르게 돌아왔다. 천만다행으로 추락을 면했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발 홀드는 손가락 두 개 정도 되었지만 물이 있어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손가락은 클림프 홀드지만 다행히 벽이 누워있어 겨우 버티고 있다.
확보물을 확인해 본다.
4~5미터 아래 0.2호 캠, 그 아래는 낡은 하켄, 빠르게 추락 계수까지 계산 끝.
이 기분은 정말 죽을 맛이다.
정상이 코앞인데, 긴 한숨과 함께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켜보려고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종화에게 빌레이를 잘 봐 달라고 다시 부탁한다.
딛고 있는 눈이 녹아 촉촉한 발홀드를 비비고 발 바꾸기 하기를 몇 번, 얼마나 지났을까?
긴 호흡과 함께 위를 바라본다. 아!~~~~~~
2미터 정도 될까? 눈과 얼음보다 더 반짝이는 은색 하켄이 위 바위틈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신이시여!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안아주고 싶다. 속으로 몇 번이고 고맙다고 절하고,
종화에게 다시 확실한 빌레이를 부탁하고, 위에 있는 하켄을 만나기 위해 덮인 눈과 얼음을 털어내 조그만 홀드를 찾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잡고 올랐다. 하켄을 잡고 퀵하고 다음 매달렸다.
살았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며 후미를 보고 빙벽화와 크램폰을 착용하고 등반하라 일러주었다. 펜들륨으로 우측으로 트레버스 한 뒤 맞은편 붉은 암탑 앞으로 약 6~7미터 위에 있는 확보지점에 확보하고 길게 숨쉬어 본다. 그때서야 손가락이 아려오고 발가락이 시려왔다. 깨질 듯이 아프다.
5분 정도 쉬고 나니 손발의 통증이 돌아오고 워커스퍼에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형윤이와 영효를 위해 자일 하나를 고정해줬다. 잘 한 것 같다.
두 사람은 여기서 비박하라고 전하고, 우리는 암탑 앞에서 한 피치 더 등반하여 비박을 하기로 했다.
나는 최고로 조망이 좋은 곳에 자리 잡았으나 엉덩이 반만 걸칠 수 있는 곳이었다.
기나긴 밤이었다.
# 정상이다!(22. 08. 02)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고 나니 아침이 찾아왔다.
추워서 밤새 떨었다. 바람의 기억이 오래 갈 것 같다. 별을 보는 시간보다 구름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일어나 배낭을 챙겨서 어제 마지막 교신 후 방전된 무전기를 배낭 속에 챙겨 넣었다.
고요한 아침에 산사에 울려퍼지는 새들의 지저귐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밤을 함께한 전사들을 불렀다. 춥다고 가자고~
식량이 없으니 식사 시간도 없었다. 우리팀만!
붉은 암탑을 돌아서 3피치 정도 오르자 정상까지 이어지는 침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까지는 3피치 정도 남은 듯했다. 한 피치를 오르고 확보하는데 낙석이 떨어졌다. 아래를 보고 낙석! 하고 외쳤는데 이상하다. 벽에서 떨어진 낙석이 아닌 듯 보인다. 나한테서 떨어진 것 같다. 주머니에서
뭔가하고 유심히 보고 또 보았다. 잘도 내려가고 있다. 하염없이 불러도 대답도 없이 내려갈 것 같다.그냥 가라고 했다. 폰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정상이 눈앞에 있었다. 그냥 정상만 바라보았다.
마지막 피치를 향해 기분 좋게 올랐다. 형윤이가 뒤따랐다. 정상은 늘 많은 것을 준다.
50m를 오른 것일까 밑에서 자일이 얼마 남지 않다고 소리친다. 5~6m 정도 부족해 보였던 것 같았나보다. 아~ 할 수 없었다. 정상 바로 밑 피너클에 가지고 있던 슬링과 캠으로 확보했다. 뒤따르던 형윤이는 바로 정상으로 올라 안전하게 도착한다. 내가 다 기분이 좋다.
나는 정상 바로 밑에서 빌레이도 보고 주위의 멋진 경치도 구경한다.
형윤이가 정상에 오른 시간이 10시 30분쯤이었다. 그 뒤를 나, 종화, 영효 그리고 건이 형님이 올랐다.
2022년 8월 3일.
우리들의 작은 소망 하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정상에 다 섰다. 나름의 방식으로 정상의 기쁨을 만끽하며 사진으로 행복의 순간을 하나하나 담았다.
# 하산의 시작 (22. 08. 03.)
정상에서의 오랜 행복을 감미롭게 느끼는 것도 잠시
내려갈 시간이다. 오를 때의 어려움만큼이나 신중해야 했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쉽게 생각한다면 오를 때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하산이다. 하산은 늘 어렵고 위험하다. 신중해야 한다.
정상에서 하강하기 위해서는 약 100m의 설벽 구간을 40m정도 안자일랜으로 내려가서 50도를 조금 넘는 구간을 약 60m 정도 로프로 하강하여 암릉구간까지 내려갔었다.
설벽이지만 따뜻한 날씨에 계속 얼고 녹고를 반복해서 빙질은 나름 강했다. 피켈 두 개를 깊게 박아 확보하고 모두 하강한 후 마지막은 클라이밍다운을 했다.
암릉 구간은 더 어렵고 힘들었다. 50~60도 정도의 너덜지대로 난 길은 지그재그로 여러 갈래로 되어 있고 한 발 한발 디딜 때마다 낙석이 떨어지는 길을 따라 150m 이상 하산해야 했었다.
암릉구간 마지막쯤 왔을 때 경사가 약 60도 정도 되는 약 70m 길이의 설벽에 도착했다.
5명 모두 60m 가까이 하강하자 테라스가 있었고, 여기서 다시 10m 정도 로프로 하강을 했었다.
빙하에 내려서서 우측 꾸르마이어에서 웜퍼봉으로 방면에 있는 호포이서 릿지(rocher du reposoir) 벽으로 가서 암릉길을 따라 내려가다 빙하로 난 길을 보고 내려서려 했다.
아래 크레바스가 너무 많아 위험했다. 주위를 돌아보자 우측에 하강포인트가 있었다.
50m 자일로 고정하고 좌측 사선으로 길게 하강했다. 다시 60m 자일로 두 번 하강했었다.
아래 암릉길을 따라 70m쯤 내려가자 벽 끝에서 여러 곳의 하강포인트를 발견했다. 등반루트로 보였다. 제일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30m, 60m, 다시 60m를 하강하여 펄론펀쿠르(Planpincleux) 빙하로 내려서자 밤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피곤했으나 빙하에서의 비박은 위험할 수도 있어 조금만 더 내려가 빙하를 벗어난 뒤 비박을 하든 쉬어가든 하기로 하고 먼저 길을 찾아 내려가서 어둠이 드리우고 얼마 안 있어 빙하지대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순간이다.
# 기나긴 여정 뒤 끝(22. 08. 03)
이제 문제는 보칼레트(Refuge Boccalatte, 2,803m)산장을 찾는 것이었다.
애타게 찾았지만 어두워 산장이 잘 보이질 않았다. 너덜에 가까운 계곡을 따라 터벅터벅 쉬지 않고 내려왔건만 산장은 없고 저 멀리 꾸르마이어 마을 불빛만 계속하여 환하게 우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불빛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걸었으나 끝이 없었다.
우리들의 불빛은 서로 멀어지고 있었다. 선두와 건이형님의 간격은 미련없이 떠나는 사람처럼 자꾸만 멀어져갔다. 우리는 결국 포기하고 형윤이가 힘든 몸을 이끌고 올라가 내일 마을 입구에서 만나기로 기약하고 각자 알아서 비박하기로 했다.
이제 북벽에서 못다 헤아린 별을 남벽으로 내려와 술잔에 담아 밤새 헤아리다 잠들고 싶었으나, 결국 남벽의 너덜지대 암벽 사이에 쪼그리고 누워 몇 개 헤아리지도 못한 체 이태리에서의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건이 형님과 영효를 찾기 위해 위를 보니 보컬레트 산장이 떡하니 절벽에 붙어 있었다. 밤새 숨박꼭질 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뭐라고 해야 할까!
걱정스러워 일행을 찾아 비박했을 곳으로 올라가 보았으나 아무도 없다. 하산한 듯 보였다. 위에서 보니 산장을 내려서면서 좌측 계곡을 따라 푸른 능선으로 예쁜 등산로가 보였다. 밤이라 우리는 그대로 내려온 것이었다. 형윤이도 나도 짐을 꾸려 서둘러 하산했다. 능선 끝에 이르자 저 멀리 두 사람이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기쁜 마음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이틀을 굶었는데 배가 고프질 않았다.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를 않는다.
오늘 밤에는 예쁜 술잔에 샤모니 밤하늘의 별과 설산과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아서 밤을 새워 그들과 웃고 마시며 잠들고 싶었다.
북벽의 향기를 함께 한 건이형님, 형윤, 영효, 종화에게 가슴깊이 고마움을,
우리가 잘 즐기고 돌아올 수 있도록 안전을 염원해주신 회원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고맙다고,
bbc를 알고 사랑하고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신 동아대악우님들, 대형형님외 원정에 도움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감수해주신 양말형님께도 ㅎ
앞으로 좋은 등반을 계획하시는 모든 분들이 안전한 등반 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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