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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imbimg information/─ 등반지 정보

울릉도 송곳산 북벽 재등

by 공자 (공영효) 2015. 3. 18.

< 등 반 개 요 >
(1) 행사명 : 창립 13주년 기념 송곳산 등반
(2) 대상지 : 울릉도 송곳산
(3) 기 간 : 1982.년 10얼 4일 - 10월 9일(5박6일)
(4) 대 원 : 심재창, 이 경우
(5) 목적 및 과제 : 창립 13주년을 기념하여 재학생들의 암벽등반 능력을 향상시키며 안전을 위주로
     신속히 등반을 한다.
 
 < 등 반 일 지>

 <아래그림 : 송곳산개념도, 확대이미지>
 

 

낙석"하며 떨어지는데 굉장히 큰 돌이었다. 떨어지는 걸 보니 땅에 두 번 구르고는 바로 바다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들어가 버렸다. 얼른 괜찮으냐고 소리지르니 괜찮다고한다. 여기서 우리는 실수, 호각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오르던 재창이도 이제는 헤드렌턴을 꺼내어 쓰자고 해서 알았다고했다. 트래퍼스후 직등하는 재창이도 상당히 고전한다.

제 1일 10월 4일 (월)
우리는 오후 늦게 동부 정류장에서 이영대 형님과 만나 포항을 향해 떠나는 것으로 등반은 시작되었다. 저녁 늦게야 부둣가에 도착해서 바로 여인숙에서 하루를 자기로 했다. 역시 부둣가의 밤은 ? 했다. 영대 형님의 울릉도 이야기를 듣다가 잠에 빠져버렸다.

제 2일 10월 5일 (화)
재창이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벌써 조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영대 형님과 같이 먹고나니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 형님은 배 시간을 알려고 부둣가에 간 사이에 우리는 장비를 완전히 점검하고 다시 한번 꾸렷다. 그러는 중 형님이 오셔서 9시에 배가 출항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오늘 청룡호는 출항하지 않고 한일호가 나간다 한다. 다름이 아니라 배삯이 문제였다. 우리는 예산을 청룡호 가격으로 맞추어 준비해 버렸다. 한일호는 배삯이 청룡호 배가되었다. 일정은 짜여있고 할 수 없이 우리는 한일호를 타고 울릉도를 향해 출항을 했다. 영대 형님은 이틀 후에 들어오신다고 해서 우리와는 다시 헤어졌다. 배는 서서히 움직여 6시간의 긴 여로 끝에 울릉도에 도착했다. 먼저 울릉경찰서에 가서 등반허가를 마치고 영대 형님 집에 가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구들의 호의를 뿌리치고 우리는 걷기 시작해서 해변도로를 계속 걸어서 천부동 영 못미쳐서 캠프를 쳤다.

3일 10월 6일 (수)

아침 5시에 출발을 했다. 새벽 바닷바람은 쌀쌀하면서도 상쾌했다. 계곡에는 많은 수석들이 있었다. 좋은 것들이었다. 걸으면서 재창이가 수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언제 왔는지 천부동 가까이에 와 있었다. 조금 걸어 비탈길을 돌아서니 송곳산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규모는 컸다. 재창이는 지금 가서 점심을 해먹고 등반을 시작하자고 했다. 나도 좋다고 했다. 난 아직 비박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번 경험하고 싶었다. 조금 걸어서 송곳산 바로 밑에 도착했다. 거기엔 추산 발전소가 있었다. 바로 옆 길모퉁이에 텐트를 치고 점심을 해 먹었다. 다시 장비를 꾸려 등반 준비가 다 되어 송곳산 바로 밑까지 숲을 5분 정도 헤쳐가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시각은 정각 2시였다.

재창이는 등반루트를 잡기위해 열심히 망원경으로 살피더니 등반을 시작하자 한다. 우리는 직벽에 바로 붙을려고 했지만 암질 상태가 고르지 못했다. 그래서 밴드를 따라 부시지대를 통과해서 오르기로 하고 내가 큰 소리로 요들을 외치며 오르기 시작했다. 부시지대를 오르다 70m 쯤 달아올라 왔을 때 우리는 직벽으로 바로 등반을 시작했다. 여기까지 안자일렌으로 올라왔었다.

먼저 재창이가 프렌드를 끼우고 본격적인 등반은 시작되었다. 재창이의 바란스는 항상 좋았지만 오늘은 더욱 확실하였다. 난 속으로 마음이 든든해 졌을 때 후등자 등반을 사작하라고 한다. 프랜드를 뽑으며 올라오니 아주 넓은 테라스였다. 이제 여기서 부터는 계속이었다. 담배를 하나 피우고 있으니 밑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꼬마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우리도 열심히 흔들었다. 계속 흔들다가는 해가 질 때까지 해주어야 할 것 같아 3피치를 시작하기로 했다. 1피치에서는 프렌드 3개만 사용했다. 이제 처음으로 하켄을 재창이가 멋지게 박는다. 함마소리는 경쾌하게 잘 박혀준다. 그 소리가 이제부터 정신차리라는 소리 같기도 한 것 같아 보였다.

경사도는 80°가량 되었다. 직벽으로 크랙은 잘 발달되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켄 2개가 겹쳐서 박혀 있는 것과 긴 런너를 발견했다. 아마도 울산산악회팀이 여기서 하강을 한 지점 같았다. 4피치 등반을 하려고 할 때 하켄과 슬링을 버리기로 하고 그냥 그기에다 두고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어려운 코스가 시작되었다.

4피치를 좌측으로 트래퍼스를 해서 오르던 재창이가 " 낙석"하며 떨어지는데 굉장히 큰 돌이었다. 떨어지는 걸 보니 땅에 두 번 구르고는 바로 바다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들어가 버렸다. 얼른 괜찮으냐고 소리지르니 괜찮다고한다. 여기서 우리는 실수, 호각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오르던 재창이도 이제는 헤드렌턴을 꺼내어 쓰자고 해서 알았다고했다.

트래퍼스후 직등하는 재창이도 상당히 고전한다. 홀드가 없었다. 또 하켄도 가장 많이 먹었다. 후등으로 오르면서 하켄 회수하기란 힘이들 정도였다. 둘다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특히 확보가 좋지 못했다. 나이프 릿쓰인데 확보는 암각에 했고 둘이 서기란 힘이들었다.

이제 완전한 밤이었다. 바로 재창이가 오른다. 여기는 약간의 오버행인데 상부에는 잡목이 섞인 크렉인데 재창이는 잘해 나간다. 재창이와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지 물을 먹고 싶을 뿐이었다. 벌써 물 한 통을 먹어버렸다. 이제 여기서 석식을 하기로 했다. 빵이었다. 억지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러다가 재창이가 언제 넣어왔는지 배를 꺼내서 깍는다. 껍데기는 모두 버리기 아까와 물기만 빨아먹고 버렸다.

여기서 한 가지 신기한 건 아주 큰 향나무였다. 아름 둘레가 족히 2m는 되어보였다. 자세히 보니 우리는 향나무인지도 모르고 확보했었다. 조그만 가지를 꺽어보니 향기가 물씬 풍긴다. 두 번째로 여기서 담배를 하나 피웠다. 재창이는 빨리 등반했으면 하는 눈치 같이 보이기도 했다. 난 얼마나 빨리 피웠는지 머리가 핑돈다. 다시 재창이는 오르기 시작했다.

급경사에 부시지대였다. 70°정도의 경사인데 잡목도 무성하고 등반도 아주 용이하였다. 밤이되니 낙석은 더욱 심했다. 낙석은 우리들 머리위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데 솔직히 괴로웠다. 테라스에 도착하니 비박하기엔 아주 적합할 것 같았다. 우리는 여기서 비박하기로했다. 조그만 샥에서 스톰을 꺼내입고 벽에 기대고 바다를 보니 경관이 아름다웠다. 특히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상당히 예쁘게 보였다.

그때 저쪽에서 구름과 번개가 오더니 10분정도 있으니 구름만 지나간다. 무척 다행이었다. 사실 그때 난 속으로 기도를 했다. "하늘이여! 우리를 도와달라"고... 추산발전소를 보니 누가 랜턴을 깜박깜박거려준다. 우리도 계속해서 깜박깜박해 주었다. 그러다보니 새벽 2시가 되었다. 잠을 청했다. 옆에 재창이가 있어서인지 잠이 조금 오기도 했다. 제 4일 10월 7일 (목) 해가 떠오를 무렵에 우리는 등반준비를 갖추고 쇠고기햄으로 조식을 마쳤다.

7피치가 시작되었다. 밴드코스이기도 했다. 위에는 작은 슬랩도 있었다. 밴드코스이기도 했다. 위에는 작은 슬랩도 있었다. 확보는 나이프 2개를 박았다. 여기서 보니 이제 정상이 가까운 것 같기도 했다. 서로 힘을 내자고 했다. 재창이는 연달아 앵글을 쭉 3개를 박아 올라갔다.

향나무가 상당히 많았다. 붕괴 위험이 많았다. 홀드는 풍부한 직벽이었다. 여기서도 큰낙석이 있었다. 낙석이 되면서 자일이 끼여 끊어질 뻔 했다. 9피치는 큰소나무가 있는 크랙에 나무가 쭉 자라 있었다. 여기서는 내가 선등을 했는데 재창이가 확보를 확실히 하라고 주의한다. 여기는 우규형님이 이야기한 곳이였다. 텐트하나는 칠수 있었다. 비스듬하기는 했지만 비박하기엔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오르니 이름 모를 새들도 놀래서 달아난다. 이제 마지막 피치였다. 80m 정도 남았었다. 프랜드 2개를 끼우고 계속 올라가니 드디어 정상이었다 기록촬영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물을 완전히 비우고 하산을 시작했다. 아주 날카로운 릿지였다. 계속 릿지하강을 하다가. 트래퍼스해서 자일 2동으로 소나무에 걸고 자일을 떨어뜨리니 딱 끝자에 맞아 땅에 1m 정도 모자란다.

여기서 갑자기 형님들이 표시해 두었다는 정상에 필름통을 찾지못하고 온 생각이났다. 섭섭했지만 하강을 했다. 밑에 도착해서 추산마을 쪽으로 계속해서 스크리지대였다.

한시간 가량 내려오니 마을 논이었다. 추수하던 아저씨들이 수고했다고 반겨준다. 난 괜히 어깨가 어쓱해졌다. 마을 수도에 둘이가 앉아서 물 두 바가지는 마셨으리라. 배가 불렀다. 텐트 앞에 도착하니 정각 12시 30분 이었다. 재창이와 나는 서로 악수를 하며 수고했다고 했다.

서로 자네 덕분에 무사히 마쳤다고 칭찬이다. 발전소 아저씨가 와서 격려도 해주신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누군가 와서 "올라갔으면 향나무를 베어오지 않고 뭐 했느냐"고 묻길래 그냔 웃고 치웠는데 우리가 북벽으로 한번더 한다니깐 사정사정한다. 그래서 향나무와 우리는 관계없다고 꾸짖어 버렸다.

우리는 앞 선창에서 바다낚시도하고 유명한 오징어회를 먹으며 오후를 보냈다. 정말 흐뭇한 등반 이었다. 두 번째 등반은 나의 절대적인 반대로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런데 재창이는 정찰까지 하고 와서는 하자고 꼬셔댄다. 난 차라리 죽여라 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자버렸다. 울릉도에서 청룡호에 몸을 싣고 돌아올 때 뱃전에 나와 지나간 며칠이 영화처럼 지나감을 생각할 때 쓸쓸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등반에 도와주신 선배님들 그리고 재학생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더욱 더 진취적인 등반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자그마한 쾌거였지만 내 가슴엔 영원히 남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