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지 등반 ▒ 우두산 의상봉 실크로드 리지 ▒ 의상대사가 바라보며 참선하던 바윗길 |
의상봉은 우두산(牛頭山 1046.2m)에 있는 아홉 봉우리 중 하나다. 신라 문무왕(667년) 때 의상대사가 전생에 이어 현생에서도 참선한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의상봉 리지는 97년 대구 카라코람산악회에서 개척한 코스로 전 구간 잘 정비되어 있다. 2월 9일, 새벽 하늘은 별들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7시 40분, 7명의 일행은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고견산장을 출발했다. 진흙길, 돌길 , 눈길이 교차되는 등산로를 따라 40분만에 고견사에 도착했다. 의상대사가 마셨을 지 모를 약수로 목을 축이고 의상봉 리지, 일명 ‘실크로드’ 들머리에 선 시간은 8시 40분이었다. 출발 지점은 고견사 왼쪽 등산로를 따라 약 100미터 오르면 오른쪽으로 표지판이 있는 곳. 그러나 일행은 고려 초에 조성된 마애불 바로 뒤 능선을 따라 소나무 사이를 헤집고 실크로드를 찾아 올랐다. 출발지점 3미터 슬랩 하단에 ‘카라코람’, ‘발토로’라는 흰 페인트 글씨가 있었다. 카라코람은 쉽고 발토로는 약간 어렵다. 그러나 두 코스는 한 봉우리를 올라서면 항상 만나게 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역량에 맞도록 구간에 따라 두 코스를 선택해 올라도 된다. 출발 지점 표시 5미터 위 본격적인 암벽등반이 시작되는 곳에서 일행은 장비를 착용했다. 의상대사가 전생과 현생에 걸쳐 바라보며 참선하던 그 암릉을 대사의 눈길 따라 1300년이 흐른 오늘 7명의 중생이 구도하는 마음으로 "출발!" 하고 외친다. 카라코람과 발토로 루트 중 택일 1봉의 왼쪽 카라코람루트를 김종연씨가 선등하고 오른쪽 발토로루트를 김동관씨에게 권했다. 왼쪽 길은 연등(오르기 쉬운 바위사면을 여러 사람이 로프를 연속해서 묶고 올라가는 등반형식, 이 때 한 사람이 추락하면 로프에 묶인 전원에게 영향을 주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이 가능한 쉬운 길이지만 바위 군데군데 얼음이 있어 격시등반(한 사람이 안전한 곳까지 올라간 다음 시차를 두고 다음 사람이 올라가는 등반형식)을 했다. 두 사람 모두 리지 등산학교 수료생이지만 아직 경험이 많지 않다. 오른쪽은 약간 오버행 크랙(바위벽이 90도를 넘어 앞으로 넘어 질 듯이 서 있고 거기에 손이나 발이 들어 갈 수 있는 바위틈이 있는 곳)이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못하겠다고 한다. 겨울 등반인데다가 등반대원도 7명(남자 5명, 여자2명)이고 갈길 또한 멀다. 그래서 오늘은 초보자 코스인 왼쪽의 카라코람루트로 오르기로 했다. 1봉 두 번째 마디도 초보자에게 어렵지 않은 슬랩, 8미터가 끝나면 암각에 슬링이 묶여 있다. 겨울철이 아니면 클라이밍다운(바위를 붙잡고서 올라갈 때의 역순으로 내려가는 것)해도 되는 곳이다. 그런데 바위사면에 10센티미터가 넘는 눈이 쌓여 있어서 8미터 로프하강 한 후 30미터 숲길을 걸으면 2봉 앞에 선다. 미니트랙션 사용, 격시등반으로 시간 절약 2봉의 첫째 마디 10미터 크랙을 오르면 확보용 볼트가 있고 여기서 루트는 좌우로 갈린다. 쌍볼트(바위에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고 확보용 볼트를 두 개를 나란히 박아 와이어나 슬링으로 이 두 개를 연결한 것)에 확보하고 왼쪽으로 8미터 정도 바위를 안고 돌 듯이 횡단등반 해야하는데, 바위에 얼음이 덮여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비상용으로 준비한 아이스 해머(얼음을 깨거나 얼음이나 바위틈에 인공확보물을 박는데 사용하는 장비)로 얼음을 깨고 조심스럽게 넘어갔다. 겨울철 리지등반은 아무리 쉬운 코스라도 그늘진 곳은 얼음과 눈이 반드시 있으므로 장비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소나무에 확보하고 크랙을 8미터 오른 후 숲길 20미터를 걷는다. 3봉 왼쪽 루트는 중간에 볼트가 1개 있는 크랙으로 10미터 정도다. 이렇게 별 어려움 없는 5.6∼5.8 (암벽등반의 난이도를 나타내는 국제적 약속으로 5.0부터 5.14까지 있다. 5.1은 바위평면을 그냥 걷는 정도로 위험이 전혀 없는 등반이며 5.5까지는 초보자도 무난히 할 수 있는 정도. 5.6∼5.7은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한 정도의 난이도다. 5.8∼5.9는 지속적 반복훈련이 필요한 난이도며 5.10 이상은 고난도의 암벽기술과 체력을 요하는 수준이다. 이상은 모두 선등으로 오를 경우다)정도의 난이도에서는 미니트랙션에 의한 격시 등반이 안전을 확보하면서 스피드를 올리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일행은 선등자가 올라가 로프를 고정시키면 중간 사람은 미니트랙션에 의한 격시등반으로 시간을 절약했다. 3봉에 오른 후 60미터 숲길을 걸은 후 바로 4봉에 붙어도 되고 왼쪽으로 15미터 정도 바위 밑을 돌아서 올라도 된다. 반침니 지나 가장 어려운 6봉 직벽 4봉은 좌우 어느 쪽도 큰 어려움 없는 슬랩과 크랙. 올라간다는 단순한 목적보다는 낯선 리지에서 스스로 루트파인딩을 하고 기존의 루트를 약간씩 변형해 보는 것도 리지 등반의 즐거움이다. 4봉에서 5미터 클라이밍다운 하면 통로 같은 공간을 지나 바로 5봉이다. 4봉과 5봉을 구분하는 것은 좀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코스 개척자의 구분을 따르기로 한다. 5봉에 도착하면 오른쪽으로 숲길을 걸어서 6봉에 갈 수 있다. 5봉 끝까지 올라가 쌍볼트에 자일을 걸고 18미터의 오버행을 하강하는 것도 깜짝 묘미가 있다. 나와 김동관씨만 하강하고 다른 5명은 걸어서 먼저 6봉으로 갔다. 의상봉 실크로드코스는 마디가 끝날 때마다 흰색 페인트로 화살표시가 잘 되어 있다. 그런데 6봉의 첫마디 출발지점에서 무심코 화살표를 따르다 보니 올라선 후 카라코람으로 올랐는지 발토로로 올랐는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우리가 올랐던 코스를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3미터 슬랩과 훼이스를 올라서니 앵글하켄이 하나 박혀 있고 직상으로 볼트가 또하나 박혀 있는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하켄에 퀵드로를 걸고 오른손으로 로프를 더블로 잡아 자세를 낮춰 왼쪽으로 3미터정도 트래버스를 하고 일어선다. 크랙을 2미터 올라서면 볼트에 닿는다. 볼트는 오버행 위에 박혀 있고 오버행을 안고서 넓은 크랙이랄까, 반침니랄까 하는 곳을 3미터 오르면 쌍볼트 확보 지점에 다다른다. 이 반침니의 출발이 오버행이기 때문에 자세를 잘 잡고서 왼손과 왼발을 크랙에 정확히 끼우고 두 스텝만 올라서면 오른쪽 손에 홀드가 잡힌다. 쌍볼트에서 10미터 정도 나이프리지를 상쾌하게 지나 왼쪽으로 돌면 소나무가 있고 4미터를 더 가면 또 쌍볼트가 있다. 의상봉 실크로드코스 중 가장 어려운 직벽이 가로막아 선다. 톱로핑으로 통과한 벙어리 크랙 쌍볼트에서 왼쪽 슬랩으로 턱걸이하면 하켄이 박혀 있다. 여기서 직상하는 루트와 왼쪽으로 2미터 가서 볼트 하켄에 퀵드로를 걸고 벙어리 크랙에 작은 프렌드를 끼우고 오른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입수한 자료에는 왼쪽 루트는 난이도 5.9, 오른쪽 루트는 난이도 5.10 이었다. 실제 등반을 해 보니 왼쪽도 5.10이다. 겨울철이라 배낭 무게와 부피도 만만치 않았고 신발도 암벽화가 아닌 리지화를 신어서 그런지 벙어리크랙을 결국 자력으로 오르지 못하겠다. 볼트하켄 위에 프렌드를 끼우고 벙어리 크랙을 2미터 올라섰다. 프렌드 작은 것을 하나 더 끼우면 좋겠는데 프렌드가 큰 것밖에 없다. 볼트를 올라서면 직벽이라서 다시 다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두발을 겨우 붙이고 벙어리 크랙에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 끼우면서 15분을 궁리해 봐도 근육에 경련만 일어날 뿐이다. 단 1미터만 더 오르면 되는 위치다. 그냥 추락을 할까(추락거리 5미터정도), 올라가다 추락을 할까 기로에 섰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계속되는 등반으로 양 손목의 인대가 조금씩 늘어난 상태이고, 그저께 부산 금정산 무명리지에서 양쪽 무릎에 가벼운 상처까지 입었는데…. 일행 중 이 실크로드를 등반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 처음이다. 만약 여기서 추락해 버리면 이 루트에 대한 난이도를 판단할 길도 없다. 갖가지 생각이 교차되었고 할 수 없이 김동관씨에게 로프를 갖고 우회길로 돌아가 위에서 톱로핑(로프를 위에서 내려주어 추락을 예방하는 방법)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추락은 필연적이었다. 톱로핑으로 1미터를 올라서니 쌍볼트가 있었다. 그곳에 확보하고 위에서 오른쪽 발토로루트를 관찰해 보니 오히려 그쪽의 홀드 상태가 양호하다. 앞으로 실크로드를 등반 할 사람들은 이 구간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쌍볼트 지나 의상봉 정상으로 6봉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큰 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의상봉으로 오르는 리지에서 가장 큰 암벽이다. 하지만 이 암봉은 실크로드리지 코스에서 옆으로 비껴 서 있다. 리지에는 암봉의 끝이 살짝 걸쳐 있을 뿐이다. 앞으로 이 암봉을 코스에 넣은 루트를 완성시킨다면 더욱 빛나는 실크로드가 될 것이다. 6봉 쌍볼트에서 20미터 암릉을 걷다가 이 암봉의 왼쪽 끝자락을 스쳐지나 내려서면 희미한 소로와 만난다. 소로를 따라 왼쪽으로 15미터 걸으면 마지막 7봉 출발지점이 된다. 7봉 첫마디 소나무에서 왼쪽 카라코람루트와 오른쪽 발토로루트가 만났다가 다시 좌우로 갈린다. 왼쪽 루트는 소나무 위 쌍볼트까지 약 20미터, 출발 3미터 지점에 하켄이 한 개 박혀있고 크랙, 반침니, 턱걸이 등으로 오른다. 중간에 프렌드 중간 것과 큰 것을 하나씩 설치했다. 이와 같이 리지 등반 시 마디 길이가 길 경우 선등자는 암각이나 나무, 프렌드 등을 이용해 만약의 추락에 대비하는 안전등반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오르는 사람이 회수하면 된다. 마지막 쌍볼트에서 쉽게 10미터쯤 오르면 리지등반은 끝나고 30미터를 걸어서 의상봉 정상에 선다. 오후 4시. 등반 중 내내 우리를 감동시켰던 넓고도 넓었던 운해는 다 걷혔다. 휜 눈을 이고 있는 남덕유, 북덕유와 멀리 지리산 천왕봉, 반야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가야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서있고 발아래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우두산 주능선과 우리가 올라온 실크로드가 새롭게 다가온다. 의상대사는 이곳에 올라 인간사의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는 또한 무엇을 보려고 의상봉에 서 있는가. 하루종일 뿌리던 어제의 겨울비와 봄날처럼 따뜻한 오늘의 햇살이 바로 인간사란 것을 새삼 깨닫고 이백아홉개의 철계단을 속으로 세면서 하산 길을 재촉했다. <글| 이규태 사진|이훈태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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